Ⅰ. 서론

"난 후회 안해." 필자가 살아온 동안 이 말이 이렇게나 섬뜩하고 무섭게 와 닿는 건 처음이었다. 이제껏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오프닝과 결론--- 보는 내내 극리고 보고 나서도 우울함과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린 영화--- 하지만 한편으로 이 영화 같은 삶은 살지 않고 있는 필자의 현실을 감사하게 만드는 영화--- 필자가 <랑페르>를 보고 전반적으로 느낀 점이다.

랑페르----사실 필자는 영화를 보기 전 교수님이 과제물 소개를 해줄 당시만 해도 이 발음이 아주 예쁘게 들렸었다. 하지만 2차 과제물을 <랑페르>로 하기로 결정하고 영화를 구하여 보고 난 뒤에서야 그 뜻을 찾아보니 '지옥'이라는 뜻어어서 놀랐었다. 영화를 보고  그 뜻을 알고 나서는 왜 영화 제목이 <랑페르> 우리말로 곧 <지옥>인ㅇ지 공감이 갔었다. 영화는 프랑스의 평범한 중산증 가정을 배경으로 왜곡된 사랑의 욕망 때문에 고통받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있는 '지옥'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었다. 현재 성인이 된 세 자매의 지옥과도 같은 삶의 모습을 우선 보여주고 그들이 그렇게 된 원인을 찾아들어가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구조에 필자는 마치 이 영화가 심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세 자매 이외에도 심리학적으로 분석할 만한 사람이 더 나오는데 그녀들의 어머니와 동성애자 세바스티앙이 그것이다. 하지만 영화 상에는 그들의 과거는 알 수 없으므로 분석 하기가 힘들 것이다. 아무튼 영화를 보고난 후에 느낀거지만 필자가 <랑페르>를 심리학 수업을 수강하기 전에 봤다면 아마 단순히 사랑에 실패한 네 자매의 아픔을 그린 여성 중심 영화라고 느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심리학 과제를 위한 연구물이었으므로 기존가 같이 영화의 내용이나 배우들의 연기, 소품 등 보다 특히 주인공들의 살아온 환경이나 심리에 초점을 두고 보아 그들이 왜 저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위와 같은 접근 방식으로 필자는 첫 번째로 <랑페르>의 줄거리를 소개하고 둘 째로 영화에서 자주 언급되고 영화의 모티브가 된 <메디아>에 대해서 알아 보고 또한 이 영화 상에서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분석 및 심리학적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주요 장면마다 주인공들의 심리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Ⅱ. 본론

A. 줄거리

 영화는 성인 여성과 어린 여자 아이의 뒤를 따라가며 시작된다. 어린 아이가 건물을 뛰어올라 가서 한 곳의 문을 열자 중년의 남자와 벌거벗은 어린 남자 아이가 마주보고 서 있고 뒤를 따라온 성인 여자는 문을 열고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 아이의 눈을 가린다. 이 장면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지옥과 같은 삶의 출발점인 오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장면은 뻐꾸기가 오목눈이의 둥지에 알을 낳고는 오목눈이의 알 한 개를 둥지에서 꺼내 물고 날아간다. 뻐꾸기 알은 오목눈이 보다 먼저 부화를 하고 털도 안 난 뻐꾸기 새끼는 본능적으로 아직 부화가 안 된 오목눈이의 알을 등으로 밀어낸다. 두 개의 알 중에 한 개를 밀어내고 다시 나머지 한 개를 밀어내려는 뻐꾸기 새끼 그러나 잘못하여 오히려 자신이 둥지 밖으로 떨어지고 오목눈이의 알 한 개는 그대로 둥지에 남아 있다.

 이 때 교도소에서 남자가 나온다. 언 듯 봐도 꽤 오래 교도소 생활을 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막상 교도소에서 나와 보니 갈 데가 없는 표정, 들고 잇던 비닐 봉투와 윗도리를  길 옆 연석 위에 던져 놓고는 자신도 그곳에 털썩 주져 앉는다. 그 때 귀에 들리는 어린 새의 울음 소리, 떨어진 뻐꾸기 새끼를 둥지에 넣어주고 가는 출감자, 이어서 화면에 나타나는 것은 남아 있던 오목눈이의 알 한 개 마저 땅에 떨어져 깨지는 장면이다.

 충격적인 오피닝에 이어지는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앞서 뻐꾸기 새끼를 구해준 출감자는 영화에서 세 여자 주인공의 아버지인데 어린 남자 제자와의 부정을 이유로 부인에게 고발을 당해 수감되게 된다. 뒤에서 밝혀지지만 사실 그것은 오해였고 남자는 출감 후 집을 찾아가지만 부인은 남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다. 아이들을 보겠다고 소동을 치는 남편과 이들 막으려는 부인은 몸싸움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부인은 부상을 입고 쓰러지게 된다. 아이들 조차 문을 열어주지 않자 남자는 서럽게 흐느끼다 창문을 열어 자살을 하게 된다. 그렇게 성장한 세 자매인 소피, 셀린느, 안트---그들은 어린 시절의 아버지의 자살을 겪은 이후 뿔뿔이 흩어져 오랫도안 서로 연락도 끊은 체 남처럼 살아간다.

 큰 딸 소피는 이미 결혼을 한 두 아이의 엄마이고 남편은 사진 작가이다. 남편의 무관심 속에 게을러져 가는 소피, 남편의 외도로 그녀의 마음은 지옥처럼 어둡고 절망적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사랑을 요구를 한다. 남편의 뒤를 몰래 밟아 남편과 외도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배신감으로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그런 소피의 질투심은 살의가 느껴지며 섬뜩하기까지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소피가 남편의 외도를 미행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소피가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외상의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부모가 그랬듯 소피 역시 두 아이가 보는 앞에서 남편과 싸우고 남편을 집 밖으로 내 쫓는다. 남편의 사랑을 잃은 소피는 참지 못하고 분노한다. 소피의 두 아이들은 그것을 지켜 본다. 그런 소피의 에피소드는 어린 시절의 사건과 유사하게 흘러간다.

 둘째 딸 셀린트는 어머니를 돌보며 어떤 남자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은 여성이다. 어머니와 함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방에서 벌거벗은 남학생과 아버지의 모습을 대면한 충격 때문이다. 그래서 세 자매 중 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시기도 한다. 그녀는 정기적으로 요양소에 있는 어머니를 보러 기차로 왔다갔다 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어머니가 좋아 하는 밀크 초코렛을 사다 주고 기네스 북을 읽어주며 시간을 보내다가 되돌아 온다. 유별나게 기차 안에서만 기차의 흔들림과 소리에 인해 겨우 잠들 수 있을 만큼 지독한 불면에 시달린다. 기차 창문에 쾌종 시계를 얹어 놓고 그 뒤에 기차표를 꽂아 놓은 장면과 비스듬히 기대어 잠든 그녀의 모습은 크게 확대되어 자주 반복된다. 그렇게 잠든 그녀를 늘 애처롭게 바라보는 열차 승무원, 기차 소리를 녹음해 건네주려는 열차 승무원과 또 하나의 로맨스를 기대 했지만 영화 내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느 날 그녀에게 꽤 괜찮아 보이는 남자가 나타난다. 자기를 좋아해서 찾아오는 줄만 알았던 셀린느, 남자 기피증으로 마음을 열지 않고 살던 여자가 사랑을 느끼며 서서히 사랑의 감정에 빠져들어 가며 당황해 하는 여인의 모습은 생경하다 못해 애처롭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온 것은 사랑이 아니라 가족의 비밀이 담긴 충격적인 과거의 진실이다.

 막내 딸 안느, 죽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결국 아버지 뻘이 되는 절친한 친구의 아버지이기도 한 지도 교수(프레데릭)를 사랑한다. 하지만 프레드릭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안느를 버리기로 결심을 하고 이에 이성을 잃어 버린 젊은 안느는 자신의 사랑이 금지된 사랑인 줄 알면서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결국 단념을 모르는 그녀의 사랑은 프레드릭를 자살로까지 몰고 가고 가장 친한 친구마서 잃어 버리게 된다.

 영화는 이 세 자매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하고 있다. 아버지에 관한 엄청난 비밀을 가진 세바스티앙이 셀린느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세 자매의 절망적인 삶을 보여주는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 한다. 세바스티앙의 고백으로 자살한 아버지는 죽음이 어머니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게 된 세 자매는 오랫 만에 함께 요양소로 어머니를 찾아온다. 출감한 아버지에게 자식들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다투다가 다쳐 말을 못하게 된 어머니에게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다 들은 어머니는 메모지에 한창 동안 한 자 한 자를 힘들 게 글자를 써 나간다.

 " 난 후회 안 해"

이 한마디를 남기며 카메라는 네 명의 여인이 앉은 탁자를 위해서 비추더니 점점 이지러지며 다시 만화경 속의 그림으로 변한다. 그녀가 뒤 늦게 후회를 한들 죽은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며 엉망이었던 딸의 삶도 결코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듯.

B. 메디아란?

<랑페르>는 부정을 저지른 남편 이아손에게 복수 하기 위해 자기 자식들을 죽이는 그리스 신화의 악녀 "메디아"의 이야기를 통해서 잔인한 운명의 수레바퀴에 휘말린 한 가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나리오의 모티브가 된 메디아는 누구인가? 메디아는 동방의 나라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딸이다. 이아손이 황금 양모를 찾아서 콜키스에 왔을 때 메디아는 이아손을 사랑하게 되고 그에게 양털을 찾는 일을 돕게 된다. 그리고 이아손과 함께 콜키스를 떠난다. 메디아의 아버지와 동생은 메디아가 이아손과 함께 콜키스를 떠나자 뒤쫓아 간다. 메디아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동생을 잡아 갈갈이 찢어 죽인다. 그리고 이아손과 결혼을 하여 코린트로 간다. 이아손이 코린트에서 국왕 크레온의 딸을 아내로 삼으려고 하고 크레온은 메디아를 쫓아내려 한다. 그래서 메디아는 마법을 써서 자기 자식을 죽이고 남편에게 복수를 한다. 아내와 자식, 결혼할 사람을 잃은 이아손은 망연자실하며 아르고흐 앞에 앉아 있다가 떡갈나무 여신상이 쓰러지는 바람에 머리를 맞아 죽는다. 그런 그의 죽음을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는 설이 있다. 이렇듯 신화 [메디아]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복수로 잔인한 이야기이다.

C. 영화 속 주요 정신질환

 <랑페르>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주요 정신질환은 [상처 후 스트레스 장애]로 보여진다. 아버지의 부정과 (물론 오해였지만) 부모간의 부부싸움, 그로 인한 아버지의 자살을 어린 시절에 목격한 주인공들은 정서적으로 커다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처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정신분석 & 심리학적 설명은 김종만 교수님의 홈페이지에서 일부 인용하였고 그 중 특별히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다고 의심이 되는 증세에 대해서는 밑줄을 그어 보았다.

[상처 후 스트레스 장애]는 불안 장애에 소속되어 있다. 불안 장애에 속하는 일반화된 불안 장애, 대인 공포증, 공황 장애, 광장 공포증, 공황 장애를 가진 광장 공포증, 급성 스트레스 장애, 강박사고 강박 행동 장애, 특수 공포증 그리고 상처 후 스트레스 장애의 9개의 장애가 불안 장애에 소속되어 있는데 이들의 공통된 핵심이 불안이다. 어린 시절이나 과거에 받은 상처가 자아가 강할 때는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잠재되어 남아 있다가 이후에 자아가 약해져서 유사한 상처로 인하여 무의식 속에 억압 되어져 있는 상처가 유사한 상처를 통해서 에너지를 공급받게 되면 연약한 자아의 방어망을 뚫고 나오게 된다. 환자는 지금 현재에서 증세를 경험하고 있지만 그 증세가 과거에 상처 경험의 반복된 재 경험임을 모르고 있다. 상처 경험에는 성폭행 경험, 신체적 학대 경험, 감정적 학대 경험, 폭력의 경험, 자연 재난에서 오는 상처 경험 등 다양하다. 상처 후 스트레스 장애자의 특징이 증세를 경험��고 있는 환자는 지금 현재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과거 속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상처를 현재로 지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상처를 당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다시 상처에 취약하다. 위험한 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상습적 피해자가 될 위험은 아미 어린 시절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어린 시절에 당한 상처 일수록 이후의 발달 괘도에 지속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감정 규제 능력에 이상, 자아 규제 능력에 이상, 대인관계 능력이 이상, 문제 해결 능력에 이상, 선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에 이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한번 피해자가 되면 치료 받지 않으면 상습적 피해자가 될 위험이 높을 뿐만 아니라 상처에 침투 당하기 쉽다.

증세

 증세는 개인에 따라 충격 이후에 나타나거나 수일에서 수년이 지난 후에 나타날 수도 잇다. 급성의 경우 비교적 예후가 좋지만 만성의 경우 후유증이 심해서 환자의 30% 정도만 회복되고 40% 정도는 가벼운 증세, 나머지는 중 정도의 증세와 함께 사회적 복귀가 어려운 상태가 된다. 증세는 크게 과민반응, 충격의 재 경험, 감정 회피 또는 마비로 나눌 수 있다. 과민반응의 환자는 늘 불안스러워하고, 주위를 경계하며,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증세를 보인다. 충격을 다시 경험하는 환자의 경우에는 사건 당시와 같은 강도로 느기는 기억, 꿈, 환각이 재연될 수 있다. 감정 회피 또는 마비를 나타내는 환자는 충격이 일어났을 때의 감정, 생각, 상황 등의 기억을 피하려고 노력하며 정상적인 감정 반응은 소실된다.

 환자들 대부분의 감정은 비현실적이고, 타락, 분노, 피해의식, 수치심을 잘 느끼게 된다. 나머니 증세들을 나열해 보면 그 상처를 회상하게 되는 사람, 장소, 활동을 피하려고 애쓰며 다른 사람과 관계를 회피하거나 애착 회피를 보인다. 감정이 제한 된다(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 잠들기가 어렵거나 계속 잠만 잔다. 짜증이 많고 분노가 폭발한다. 과도하게 경계심을 보이고 예민하다. 과장된 놀람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혼란함이 대인관계, 직업에서 직무 수행 등의 일상 생활의 주요한 기능에 의미 깊은 손상을 불러 일으킨다.

D. 주인공의 심리분석

 필자가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면서 발견한 점은 <랑페르>의 주인공인 세 자매 모두 같은 사건으로 인해 정신적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일한 사건 임에도 세 자매는 각자 너무나도 다른 성격과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1. 첫째 딸 소피 (Red)

 영화의 제작 컨셉에서도 밝혔듯이 영화는 각 주인공들의 분위기에 맞는 색깔을 정해 그들의 환경, 의상 등을 거기에 맞추고 있다. 소피는 그녀를 둘러 싼 배경, 소품 등 레드(Red)로 표현되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정열, 사랑, 질투, 의심 등으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 자매 중 유일하게 결혼도 하고 두 자녀를 두고 있는 등 겉보기에는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현재 그녀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으며 남편의 외도로 괴로워하고 있다.

 장면: 소피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으로 비 오는 날 빨간 색 차를 타도 남편과 정부가 묵었던 곳으로 의심되는 호텔에 찾아가 숙박 시설을 확인하고 카운트의 남자로부터 남편이 잃어 버린 라이트를 받는 장면

 카운터: 식당에서 이걸 찾았는데 혹시?

 소피: 남편 라이터예요. 결혼 날짜가 새겨져 있죠, 96년 5월 31일

 카운터: 이것 역시 소중하겠군요.

 소피: 그래요, 소중하죠.

필자가 둔한 까닭인지 사실 이 부분을 처음 봤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이 장면까지 남편의 외도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필자는 좀 음산해 보이는 여자인긴 하지만 정말로 소피가 잃어 버린 귀걸이를 찾으러 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두 번째 보게 될 때는 확실이 이해할 수 있었다. 숙박 시설 확인에도 모자라 결혼 날짜가 적혀 있는 소중한 라이터를 잃어 버렸는데도 정작 남편은 찾으러 오지 않았다는 것을 통해 사실상 남편과 소피와의 관계는 거의 끝나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텔 직원의 질문에 "그래요, 소중하죠"라고 답한 소피의 대사에 담긴 분노와 자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붉고 어두운 집안 구석에서 남편과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남편 얼굴에 맞춰 라이터를 껐다, 켰다를 반복하는 그녀의 무표정한 모습이 화를 낸다거나 우는 것보다 더욱 음산하고 무서워 보였다. 여기서 소피의 심리는 어떠할까? 우선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남편의 외도 가능 사실을 확인하고 더욱이 결혼 기념일이 새겨진 라이터를 잃어 버린 것에 대한 분노가 쌓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을 목력 했다거나 하는 확실한 증거도 없으며 아직은 그 상대방이 누궁린지도 모르는 상황이므로 아직은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이 남편을 의심하게 될 것이란 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장면: 잠에서 깬 소피가 방에서 나오자 남편은 웃어가며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소피를 보자 급히 끊어 버린다. 형식적으로 아침 인사를 하고 누가 버린 화초를 가지고 와서 창가에 놓고는 늦는다며 소피에게 키스를 하고 출근을 하고 소피는 남편이 끊은 전화기에 재발신 버튼을 눌러 통화 상대방이 여자임을 확인한다.

-이 장면 역시 소피의 의심이 점점 사실임이 밝혀지고 남편의 소피에 대한 사랑은 형식적으로 되어 버렸음을 알 수 있다. 이 장면에서 소피가 대사가 한 마디도 없는데 그녀의 의심과 분노가 얼마나 차갑게 커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일반인의 경우라면 방금 전에 통화한 사람이 누구냐라고 물어 볼만도 하지만 물어도 남편이 거짓말을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소피는 묻지 않고 남편이 출근한 후 재발신을 통해 상대방을 확인하며 의심과 분노를 키워간다. 그 후 오토바이를 타며 출근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남편이 가져온 화초를 만지는데 이 화초는 뒤에 남편에 대한 분노 표출의 대체물로 생각되며 이 장면에서도 앞 날이 결코 평탄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장면: 집안의 붉고 어두운 통로에 앉아 남편을 기다리며 담배를 피는 소피, 기다리다 온갖 의심으로 초조해졌는지 남편의 작업 장을 찾아나선다. 나가는 길에 두 아이가 자고 있는 모습을 비춤으로써 두 아이의 어머니임을 알려준다. 남편의 작업 장에 찾아갔을 때 남편은 보이지 않았고 벽면에 한 여성의 사진이 잔뜩 붙어있음을 보고 다가가서는 주의 물건에 걸려 소음을 내게 되고 이를 들은 남편이 작업 장으로 들어와서 같이 집으로 돌아간다.

자께: 웬일이야?

소피: 그냥 마중 나왔어

자께: 애들만 놔두고?

소피: 애들은 자

자께: 그럼 그만 갈까?

-필자는 담배를 피며 시계를 바로보는 소피에게서 "지금 머리 속에 얼마나 많은 나쁜 상상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필자도 남편의 작업 장을 찾아가는 이 장면에서 남편은 외도의 상대방과 있을 것이고 소피가 불륜 현장을 목격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상은 연예를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생각해 보았을 상상이라고 생각이 든다. 연예 초기에는 상대방을 지극히 사랑하고 믿고 있지만 서로 간의 사랑이 식어가고 특히 일방의 외도 사실이 의심될 경우에는 그러한 상상에 머리가 터질 정도로 복잡해질 때가 있다. 상대방의 말을 하나도 믿을 수가 없고 모든 나쁜 상상이 다 되는 것 말이다. 아니길 바라면서도 의심되고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지는 그런 감정 말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최저에 달했을 때이고 이 정도까지 서로를 믿지 못할 때 사실상 둘과의 관계의 회복이 힘들어진 상태라고 생각을 한다. 간단히 말해 의부증 혹은 의처증이라고 할까? 이 장면에서 보이는 소피의 심리도 그러했을 것이다. 남편이 늦을꺼라ㅏ고 말했었고 필자의 생각엔 그 다지 늦지 않는 시간이었으며 더욱 이 집에 아이들만 뇌 두고서까지 찾아 간 점을 미루어 소피는 확인을 하러 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외도의 상대방은 없었고 다만 상대방으로 의심되는 여자의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장면: 아침에 화장실에 간 남편(지께)는 거울에 꼽힌 여자 사진(외도녀로 추정)을 보고 소피에게 뭐냐면서 물어본다. 소피는 남편의 물음에 빈정되며 답한다.

지께: 이게 뭐냐?

소피: 암실에서 가져왔어

자께: 왜?

소피: 왠지 몰라?

자께: 몰라. 이 여자는 고객이야

소피: 예쁘네

자께: 뭐?

소피: 예쁘다고. 이제 그만해

자께: 뭘?

소피: 그만 해.

자께: 뭘 그만하란 거야?

소피: 그놈의 거짓 말!

- 여자의 직감인가---영화상으론 그 과정이 나오지 않았지만 소피가 외도의 상대방이 누군지 알아차린 장면이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자신이 알고 있음을 남편에게 알리는 방법이 내가 남편의 입장이라면 사뭇 섬뜩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피의 대사와 같이 그렇게 조용히 남편이 외도를 그만 두길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장면: 남편을 미행해 외도녀와 호텔이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숙박한 방을 찾아다닌다. 그 중에 문안에서 들리는 남녀의 섹스 소리를 듣고는 미칠 듯한 자멸감에 머리를 감싸안고 문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미친 듯이 문을 두들겨대지만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남편이 아니었다. 죄송하다면 돌아서는 순간 아래층의 한 방에서 나와 호텔을 나가는 남편을 발견하고 소피는 그 방에 들어가 나체인체 엎드려 누워 잠들어있는 여자에게서 그녀의 향기를 찾듯이 얼굴을 들이민다. 집으로 돌아온 소피는 먼저 뒤돌아 잠들어 있는 남편에게 샤워 후 나체인 상태로 남편을 뒤에서 감싸며 눕는다. 이 때 남편은 놀란 듯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감는다.

-<랑페르>에서 가장 야한 장면이다. 그리고 또한 소피가 결정적인 외도 현장을 목격한 장면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남편과 외도의 상대방이 같이 있음을 확인하고 영화의 화면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섹스 소리와 남편이 방을 나온 후 옷을 벗은 체로 엎드러 잠든 여자를 보여줌으로써 대강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비록 소피가 잘못된 방문 앞에서 괴로워하긴 했지만 장소만 잘못 짚었지 상황은 같았을꺼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