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축복 받은 존재이지만, 또한 외롭고 불행하기도 한 존재.

  <파인딩 포레스터>는 이러한 천재들의 번민과 고뇌, 또 그것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서로를 보듬어 주는 스승과 제자의 인간적인 관계로 그리고 있다.

  사실 이 영화는 오래 전에 한번 접했던 것인데 그 내용에 관해서는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번에 레포트를 쓰기 위해 다시 이 영화를 보면서 예전에는 얼마나 생각 없이, 또 무지하게 영화를 보았는지 알게 되었다. 예전에 봤을 때는 ‘아, 감동적인 영화구나’, ‘쟤는 잘하는 거 많아서 좋겠네’ 등 단순히 이런 생각들만을 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자말은 왜 혼자 있을 때만 글을 쓰고 매일 농구만 하고 있는지, 온 동네 다 떠벌리고 다닐 법도 한데 자신이 천재라는 것을 왜 저리 숨기는지,  포레스터는 왜 그리도 자신을 꽁꽁 숨긴 채 스스로를 가두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영화를 봤던 것이다. 또 비슷한 줄거리의 <굿윌 헌팅>과도 헷갈려하며 ‘그게 그 얘기네’하고 생각했었는데 두 작품 속의 등장인물의 심리나 주인공간의 관계가 전혀 틀린 것이라는 것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분석해보기 위해 영화를 한 번, 두 번 보며 등장인물 속으로 점점 몰입하게 되면서, 필자와는 전혀 다른 삶이고 다른 환경이지만 그들을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필자가 과연 충분할 만큼 그들을 이해했는지, 또 그것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필자 나름대로 분석해 본 주인공들의 심리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줄거리

  등장인물의 심리분석에 앞서 영화 전체의 흐름을 알아보기 위해 대략적인 줄거리를 먼저 소개하겠다.

친구들과의 길거리 농구를 즐겨하고 힙합 스타일로 몸을 감싼 16살의 고등학생 자말 월러스와 그의 친구들은 동네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 이상한 남자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친구들과 일종의 담력테스트를 하기 위해 자말은 어느 날 밤 그의 아파트에 몰래 침입하다가 들켜 도망가는 와중에 실수로 가방을 놓고 나오게 된다.

다음날 가방을 잃어버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자말을 약올리기라도 하듯 아파트 창문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가방. 그렇게 베일의 주인공인 포레스터와 자말의 만남이 시작된다. 자말의 가방 속에서 평범함을 뛰어넘는 수많은 글들을 발견한 포레스터는 잠재되어 있는 천재적인 문학적 재능을 지닌 자말을 문학세계로 이끌어주기로 결심하고, 지난 수년간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도 열지 않은 채 꽁꽁 닫아왔던 자신만의 세계에 자말을 받아들인다. 한편 자말의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비범함이 학교시험 결과에서 드러나면서 자말은 맨하튼의 명문대 예비학교에 농구특기장학생으로 스카우트되고, 그와 포레스터만의 은밀한(?) 글쓰기 수업은 계속되어 자말의 실력은 날로 다듬어지고 향상되어 같다. 그러나 그때가지도 자말은 아파트의 괴팍한 노인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존경해 마지않고 영미문학계의 가장 위대한 작가로 일컬어지는 포레스터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제 자말은 자신의 가족과 삶을 나눈 고향 브롱크스에서 나와 새로운 세상을 항해하기 시작한다. 이제 그에게는 낯설고도 엄격한 지식 공동체에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스승 포레스터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새 학교에서의 친구 클레어가 있다.

그리고 때묻은 고전서적들과 정적만이 가득했던 포레스터의 은둔지는 두 작가의 웃음과 논쟁, 학문에의 열정으로 채워진다. 포레스터는 이 어린 제자를 따라 지난 30여 년 간 닫고 살아온 창 밖의 세상에 조금씩 닿아간다.

우연한 계기로 자말은 자신의 스승이자 친구인 그가 작가 윌리엄 포레스터임을 알고 놀라지만 절대로 포레스터의 존재를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깊은 우정과 신뢰에 위기가 닥친다. 자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권위적인 교수 크로포드가 자말이 백일장에 출품한 작품에 대해 표절시비를 건 것이다. 자말은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까지 처하고 포레스터는 곤경에 처한 자신의 친구 자말을 돕기 위해 직접 학교로 나와 모든 진실을 밝힌 뒤 또 다시 어디론가 떠나게 되고, 얼마 후 포레스터의 죽음이 찾아오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은 자말과 포레스터의 마음 속 깊이 간직된다.

   2. 등장인물의 심리

이제 영화 속에 나타난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와 그 원인에 대해 자세히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

  1) 자말

왜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가?

줄거리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자말은 친구들과 농구를 즐겨하는 빈민가의 흑인 소년이다. 그는 농구에 있어서도 으뜸가는 실력을 가졌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천재적인 작문 능력 또한 가지고 있다.

천재는 외롭다고 했던가. 그가 가지고 있는 천재성과 지적능력은 그가 속한 흑인 빈민 사회와는 맞지 않는 것이어서 자말은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다른’ 존재로 격리되지 않기 위해 그의 비범함을 드려내기를 꺼려하며 성적은 딱 튀지 않을 만큼 조절하고, 친구들과의 철없는 대화에 어울리면서 형이 못 이룬 농구선수의 꿈이 곧 자기의 장래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가 자신의 능력을 드려내기를 꺼려한 것은 친구들과 다른 존재로 취급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그가 속한 환경에서 과연 얼마만큼 성공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자말은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그냥 묻어두려 했으며, 책 읽을 시간 마저 친구랑 노닥거리거나 농구에 할애하면서 지금 속해있는 흑인 사회와의 타협을 택한다. 

학교에서 실시한 테스트에서 놀라운 점수를 받지만 엄마에게 그것을 친구들에게 알리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하는 모습에서 자말의 이런 심리는 확연히 드러난다.

왜 자말은 혼자 있을 때만 글을 쓰는가?

자신의 비범함을 절대 드러내려고 하지는 않지만 글쓰는 것 자체가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자말은 ‘아이들은 꽥꽥거리고 아버지는 애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고함치고 아내는 남편더러 시끄럽다고 소리치는’ 후줄근한 이웃의 소음 이 들리는 어둠 속에서나, 아무도 보지 않는 학교의 사물함 안에서만 남몰래 책을 읽고 또 글을 쓴다.

이런 식으로 아무도 없는 공간이나 밤에만 글을 쓰지만, 연필을 놓지 않은 채 틈만 나면 글을 써내려 가는 자말의 이런 모습을 보면, 그가 인식하지 못하는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항상 글을 쓰고, 또 더 잘 쓰고 싶어하는 욕구가 존재하지만 그것을 숨기고 싶어함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앞으로 더 나아간다는 것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으로부터 벗어나려 하는 배신자가 된다는 기분에 일종의 죄책감을 느껴서 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자말이 글을 쓰게 된 원인은 극중 그의 대사에서도 드러나듯이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생긴 슬픔과 그 후 어려워진 가정형편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 또 빈민가라는 환경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번뇌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의 복합적인 심리가 어우러져 그의 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즉 그의 글의 원천은 ‘상처’이므로 자말은 자신의 글을 누구에게도 내보이고 싶어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천재성을 인정하려고도, 또 키워나가려고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자말이 포레스터로부터 얻은 것

한편 포레스터의 집에 침입했다가 두고 온 가방을 돌려 받은 자말은 가방 속에 들어있던 자신이 쓴 글들에 빨간 글씨로 교정을 하고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놓은 것을 보게 되는데, 평소 운동경기에 있어서나 친구들 사이에 있어서 자존심이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자말은 자신의 글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보고 분노하지만 한편으로는 정확한 지적에 내심 놀라게 된다.

그리하여 누구에게도 자신의 글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는 포레스터에게 만은 자신의 글을 보이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초고는 가슴으로, 재고는 머리로”라는 가르침 아래 본격적으로 포레스터에게 작문 수업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는 잠재되어 있던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게 되고, 작문 능력의 향상과 함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욕구에 대해서도 서서히 눈을 뜨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제껏 숨겨왔던 자신의 잠재가능성을 실현하고 최대한으로 개발하려는 욕구였던 것이다. 자말은 그렇게 포레스터의 가르침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깨닫게 되고 글쓰는 즐거움과 함께 자기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함께 키워나간다. 즉 자말에게 있어서 포레스터는 인생에 있어서나 작문에 있어서나 크나 큰 전환점을 가져다 준 훌륭한 스승이었다.

왜 자말은 포레스터와의 약속을 어겼는가?

작문 수업을 하면서 포레스터는 자말에게 한 가지 약속을 요구한다. 그것은 ‘자신의 집에서 쓴 글을 절대로 밖에 갖고 나가서는 안 된다’ 는 것이었다. 자말은 그에 동의하고 따랐지만 교내 백일장에 제출할 작품을 몰래 갖고 나옴으로서 그 약속을 어기고 만다.

왜 그랬을까? 전학 간 명문고에서 그가 겪는 현실은 가난과 인종이라는 굴레에 세상은 그리 관대하지 않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의 뛰어난 농구실력과 지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단지 흑인이고 빈민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몇몇 학생들은 그를 무시하고 조롱했고, 선생조차 편견에 사로잡혀 그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포레스터와의 수업을 통해 이미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획득한 자말은 지적으로는 누구보다 조숙했지만, 아직은 어린 나이였기에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 컸을 것이다. 결국 인정받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가 불러 온 조급함은 친구와의 굳은 약속을 깨게 되고 그 결과는 윌리엄 포레스터의 작품에 대한 표절시비로 나타난다.

자말이 겪는 심적 갈등

자말은 표절사건으로 인해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까지 처하게 된다. 이런 위기와 압박감 속에서 그는 포레스터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후회와 함께 자신이 쓴 글의 제목과 서문이 예전에 잡지에 실린 작품이었음을 포레스터가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는가에 대한 원망과 분노 등이 섞여 엄청난 심리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런 갈등은 외면으로 표출되어 포레스터에게 해서는 안 될 험한 말을 해버려서 그와의 사이에서까지 심각한 갈등을 빚게 되고, 중요한 농구시합에서 항상 뛰어난 슛 실력을 자랑하던 그가 결정적인 골을 성공시키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참을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워진 자말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브롱크스의 친구들을 찾아가지만 이미 친구들 사이에서 배신자로 찍혀버린 자말에게 친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한편 포레스터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것인가, 아니면 자존심의 회복을 포기하고 그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킬 것인가는 자말에게 또 다른 선택의 갈등을 야기 시킨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되찾는 대신 그들의 우정을 지키기 위해 침묵을 택한다.2) 포레스터

왜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은둔하는가?

포레스터는 단 하나의 걸작만을 남기고 사라진 천재적 작가이자 모든 문학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영미 문학계의 거물인 ‘윌리엄 포레스터’이지만, 지금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혼자 살아가는 한낱 외로운 노인일 뿐이다.

과연 무엇이 그를 이렇게 살아가게 한 것일까?

그가 첫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뒤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이인 그의 형이 사고를 당하게 된다. 자신 때문에 형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빠진 그에게 형의 담당 간호사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형에게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포레스터의 책에 대해 감동적이라고 열변을 늘어놓았다.

그로 인해 포레스터는 작가라는 것, 책을 출판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회의를 느끼게 되고 다시는 책을 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또한 얼마 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들까지 돌아가시게 되면서 그는 세상에 대해, 또 자신의 꿈과 희망에 대해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다.

너무 한꺼번에 닥친 불행과 아픔 앞에서 삶과 명예의 부질없음을 절실히 깨닫고, 더 이상의 실패와 성공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심리학자 머레이는 환경에 대한 욕구압력이론(need-press theory)을 주장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그에 의하면 한 개인은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환경과는 상호작용을 하지만 손해를 주는 환경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자기 방어적이 된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포레스터는 자신에게 아픔과 절말을 안겨 준 세상을 거부하고 스스로 문을 잠궈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윌리엄 포레스터’ 라는 작가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 D. 샐린저를 모델로 한 인물인데 실제로도 샐린저는 자폐증세가 심했던 작가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렇듯 유독 천재들에게서 스스로를 가두는 자폐증세가 많이 나타나는 것은 너무 뛰어난 재능으로 인한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히려는 성향의 ‘집중된 정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남아 있는 세상에 대한 미련

스스로 빗장을 걸어 세상과 단절한 그이지만, 창문을 통해 쌍안경으로 자말과 그의 친구들이 농구하는 모습을 종종 훔쳐보고 또 바깥 풍경을 관찰하는 것은 아직은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고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길 잃은 휘파람새를 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면서 그 모습을 캠코더에까지 담는 것을 보아도 여전히 그가 천진한 인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세상에 대한 희망을 아직 잃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자말이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떠보기 위해 그의 작품에 대한 평을 들먹거렸을 때 아주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나, ‘책을 접는 것은 작가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자말에게 화를 내는 모습, 틈틈이 글을 써서 서랍 안에 수북히 쌓아놓은 것들을 보면 아직까지 작가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이 대단하며 글을 쓰는데 대한 즐거움은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세상에 대한 미련은 자말을 자신의 세계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틈’을 제공한다.

왜 자말을 받아들이는가?

포레스터는 항상 문을 굳게 닫은 채 절대 열지 않았던 포레스터는 처음 자말이 자신의 집에 침입했을 때 자기 세계에 무단으로 들어온 것에 대해 크게 화를 내고 자말이 찾아왔을 때에도 문을 열지 않은 채 문에 달린 조그만 창문으로 그를 내다본다. 그랬던 그가 자말에게 벽을 허물고 자신을 보여준 까닭은 무엇일까.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자말의 글을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그는 그 글 속에 담긴 어린 소년의 번뇌와 고민, 또 꿈과 희망을 발견하게 되고, 또 그것을 표현해내는 천재적인 글 솜씨에 놀라게 된다. 그러한 천재성을 가지고도 환경에 얽매여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개발하지 못하는 자말에게서 거울에 비친 듯한 자신의 그림자를 본 포레스터는 그만의 언어를 찾아 주고 단련시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포레스터가 자말로부터 얻은 것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그들의 작문수업은 포레스터가 자말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방적인 형태였지만, 포레스터가 자말로부터 얻은 것 또한 엄청난 것이어서 그들의 수업은 서로에게 배움을 주는 쌍방향적인 것으로 보아야 함이 옳다.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포기한 그에게 자신보다 어리지만 자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태도는 자신에게 있어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되살려 주는 존재였고 나아가 30년만에 처음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갈 수 있게 이끌어 준 존재였다.

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상처를 처음으로 자말에게 드러냄으로써 그 상처는 아물 수 있게 되었고, 오랫동안 자신을 가두고 괴롭혔던 그것으로부터 그가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잃어버렸던 자신의 회복과 상처의 치유는 윌리엄 포레스터의 두 번째 작품이자 인생의 마지막 작품인 <황혼>을 남길 수 있게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자말의 존재는 그의 인생의 황혼에 진정한 우정을 느끼게 해 준 것이기도 했다. 암으로 죽기 전 그가 자말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를 보면 그가 자말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는지, 또 그것이 얼마나 큰 인생의 의미였는지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자말, 한때 난 꿈꾸는 걸 포기했었다... 네가 꿈을 버리지 않는 아이인 걸 알았을 때, 나 또한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지... 인생의 겨울에 와서야 삶을 알게 되었구나. 네가 없었다면 영영 몰랐을 거다."

  3) 크로포드 교수

그는 왜 자말을 미워하는가?

크로포드 교수는 자말이 전학 간 명문고의 작문 담당 교수로 아주 깐깐하고 거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한때 작가로 등단했으나 자신을 받아주는 출판사가 없자 절필하고 선생이라는 직업을 택하게 된다. 포레스터가 극중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인물은 ‘아주 뛰어나거나 아주 위험한 선생’이 될 여지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크로포드 교수는 후자 쪽이 아닐까 싶다.

그는 편견과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인물로 자말의 뛰어난 글을 보고도 그 재능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너무 훌륭해서’이다. 16살의, 그것도 흑인이 그런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을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한 교수는 끊임없이 자말을 의심하고 질투한다. 그의 이런 모습은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하는 살리에리의 그것과 흡사하다고도 생각되었다. 

또한 그는 도전 받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데 그의 수업에서 말대답을 하는 학생은 학교를 다니기 힘들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이다. 그런 그가 자신이 질투하면서도 무시하던 자말로부터 모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정면적인 도전과 심한 모욕을 당하자 그는 엄청난 분노와 수치를 느끼고, 자말의 글을 표절로 문제삼아 복수하여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하려 한다.

그의 이러한 성격은 작가로서의 좌절을 맛보고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어 비롯된 성격으로 보여진다. 작가로서의 자존심에 치명적 타격을 입고 꿈을 접어야 했던 그에게 도전이나 모욕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