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21장 -

알런은 옷을 모두 벗고 자신의 입에 재갈을 물린다. 말에게 자신의 죄를 사해주는 제물로 각설탕을 주고 너제트에 올라탄다. 알런은 말과 자신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며 말을 타다가 마지막에 아멘 이라고 외친다.

억압된 현실이 왜곡된 성적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알런은 표출할 수 없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옷을 벗고 말을 타면서 분출시키고 있다. 정상적으로 표출할 수 없는 성적 욕망은 말에게 애착을 갖게 되는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각설탕을 바치며 자신의 죄를 사해줄 것을 바라는데 이것은 자신의 성적욕구를 부도덕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이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 죄를 사해줌으로써 부도덕함을 씻어 줄 수 있는 존재를 말로 여긴다. 알런에게 말은 육체적인 욕망의 해결인 동시에 신성한 존재인 셈이다.

- 2막 23장 -

다이사트와 도라 스트랑과의 대화에서 도라는 알런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문제를 종교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한다.

→ 그녀는 부모로써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은 있지만 자식을 피할 수 없는 악이라 말하며 모든 책임을 알런에게 전가하고 있다. 절실한 광신도인 어머니는 알런의 과격한 행동을 인정하지 않으려 함과 동시에 모든 문제를 종교적으로만 풀어 내려고 해왔기 때문에 결국 알런의 문제 역시 종교적으로 풀어 내려한다. 알런의 엄마의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들은 어린 알런에게 신뢰형성에 문제를 야기했을 것이다. 이런 부모의 신뢰형성 부족으로 어린 알런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것이고 그 상처들이 현재 알런의 문제들의 원인 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 2막 28장 -

알런은 “질이 그랬어. 내가 그런 게 아냐. 질이 생각해 낸 거라구! 그 애가 날 끌어들인 거야.”라며 질과의 정사욕구가 생긴 것에 대해 부정한다.

→ 알런은 질과 있었던 정사를 강하게 부정한다. 질과의 성관계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질의 의도였음을 주장하며 질에게 투사하고 있다. 투사는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로써 몇 가지 의미 중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알런은 이렇게 우기면서 자신의 신성함을 방어하며 질과의 성관계에 대한 책임을 질에게 떠넘기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느낀 성적충동을 부도덕한 것으로 생각하여 그 감정을 인정하지 않고 감추고 싶어 하는 마음에 그 책임을 질에게 넘기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 2막 30장 -

알런과 질은 성인 영화관에서 아버지 프랑크를 만나게 된다. 프랑크는 알런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변명을 늘어놓는다.

→ 프랑크는 지금까지 아버지로써의 체면과 위엄에 흠집을 보일까 걱정하여 자신의 행동에 굳이 변명과 부인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결백함을 각인시키려 한다. 알런의 아버지는 자신의 성적욕구를 감추고 있다. 성적욕구를 들어내는 것은 부도덕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여 은폐하려 한다. 이런 영향은 아마도 알런에게도 미쳤을 것이며 이것은 바로 알런이 성적욕구를 억압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쉽게 직결된다.

 

- 2막 33장 -

알런은 문을 꼭 닫으라고 하며 화를 낸다. 둘은 서로 포옹하지만 알런은 말을 탔을 때처럼 하나가 됨을 느끼지 못한다. 알런은 그만두려 하지만 질이 계속 옆에 있겠다고 하자 화를 내며 쫓아버린다.

→ 알런은 질에게 친구 이상의 여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둘은 성관계를 시도한다. 하지만 알런은 질을 만질 때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하고 사람이 아닌 말이 생각이 난다. 질에게서 말을 탔을 때와 같은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알런은 사람의 피부가 아닌 말을 가죽 감촉을 생각하게 되고 결국 성관계는 성공하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의 변태성욕으로 분석된다. 정상적인 섹스 관계에서는 섹스 만족 즉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고 정상에서 벗어난 관계에서 섹스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을 말한다. 여기에서 정상적 섹스라고 함은 성인 남자와 여자의 성기 접촉에서 오는 쌍방간의 즐거움을 말한다. 이것에 제외되면 변태성욕으로 보았다. 이성의 성기는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이성의 성기가 아닌 동물의 접촉에서 오는 만족감이 알런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성적 만족을 느끼는 대상이 성적으로 성숙한 이성이 아닌 다른 사물이나 동물에서 성적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양육에서 섹스 욕구에 상처를 받으면 섹스 욕구가 고착된다. 이것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정상적인 애착과정을 형성할 수 없었던 알런에게 찾아온 말에게서 느낀 감정이 비정상적인 애착으로 발전된 것이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처음에 알런이 문을 꼭 닫으라며 화를 낸 것은 자신이 지금 하는 성관계는 부도덕한 것이니 남들에게 꼭꼭 숨기고 싶어 하는 심리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2막 34장 -

알런은 자신의 잘못을 말들에게 빌지만 말들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알런은 항상 자신을 보는듯한 말들의 눈을 찌른다.

→ 알런은 절실한 광신도 어머니와 그와 극단적으로 신념이 다른 무신론자 아버지와의 이질적인 종교적 상황 속에서 자라났다. 종교는 인간의 사고와 가치관을 형성하게 하는 큰 잣대중의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극단적으로 종교가 맞지 않는 불안정한 환경의 가정에서 태어난 알런은 부모의 사랑은 커녕 불행하게 어린 시절을 보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불안정환 환경에서 받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채워지지 않는 욕구들은 점점 어린 알런을 혼자만의 비정상적인 세계로 몰았을 것이다. 이 소외감은 말과 같은 잘못된 경로로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친구이자 부모이자 신이었던 말은 잘못된 애착관계로 형성된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 알런은 말의 눈을 찌르는 행동으로 폭발하게 된다. 알런은 말의 눈을 찌르는 것으로 그치지 않게 자신의 눈도 찌르게 된다. 여기서 말은 친구, 부모, 신 그이상의 또 다른 자신의 양심적인 모습과 상처받지 않고 외롭지 않은 자신으로 바라 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말이 자신의 꿈과 희망의 표상이었지만 결국 현실의 억압과 상처를 견디지 못해 말의 눈 즉 꿈과 희망을 깨어버리고 현실의 눈을 찌르며 포기해 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c. 인물분석

1. 알런 스트랑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스물여섯마리의 말의 눈을 찌른 끔찍한 사건의 어린 주인공이다. 이 어린 소년이 어떻게 해서 이런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는가는 이 소년이 단지 그저 정신병자이기 때문인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양육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상처와 억압들로 인해 삐뚤어진 애착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알런의 성장배경

알런에게, 눈을 찔렀던 말은 단순히 아끼고 보호해주고 보살펴주고 싶은 동물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였다. 알런은 정상적인 여타 다른 아이들이 애완동물 같은 강아지와 고양이를 돌보고 좋아하는 애정과는 달리 말에 대해 집착정도를 보였다. 그 집착이 점점 강해져 알런은 말을 일반적인 동물이 아닌 자신의 세계의 신으로 모시고 있다. 왜 알런에게 여느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이런 비정상적인 행동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그의 성장배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알런 스트랑은 절실한 광신도인 어머니와 그와 반대로 종교를 무시하고 얕잡아봤던 무신론자 아버지 사이에서 자랐다. 너무나 대조적인 부모 아래에서 정상적인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절실한 광신도인 어머니는 모든 문제를 종교와 연관하여 생각하고 해결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알런은 어머니에게서 받아야할 신뢰와 애정을 받지 못한다. 또한 가부장적이고 외고집의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 이렇게 분리되어있는 가정에서 (더군다나 친구도 없는 알런) 부모에게 받아야할 애정과 신뢰, 안정의 욕구를 채우지 못한 알런은 어린 나이에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상황속에서 알런은 무의식 속에서 일탈을 원하게 된다.

- 알런의 잘못된 애착관계 형성_변태성욕

자아의 분열, 자아의 해체는 어린 시절에 시작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0세~3세 사이에 그 단초가 시작된다고 한다. 이 시기는 애착이 형성되는 기간으로 인간의 발달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이라고 불리운다. 0세~1세까지는 애착이 형성되는 시기이고, 1세~3세까지는 애착이 피크 즉 절정을 이루는 기간이고, 3세 이후에는 애착이 감소하는 기간으로 밝혀졌다. 애착이 형성되는 이 시기 즉 0세~3세 사이에는 엄마가 아기 옆에 있어 주어야 한다. 아기는 이 시기에 엄마와의 신체 접촉을 통한 1차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올바른 자아를 형성하는 근간을 이루게 되는데, 단순히 함께 있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기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엄마는 아기에게 “나가 이 세상에서 최고이다”, “이 세상은 내것이다”라는 착각을 심어주어야 하는데, 이러한 착각을 통해 아기는 세상의 두려움, 공포, 불안으로부터 보호받게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이러한 착각이 아기와 엄마에게 심어지지 못하고 세상의 현실을 주입한 아기들은 어른이 무가치한 인간이라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결국 어른이 되어서 자아에 결함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 알런은 계속된 불안정된 생활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게 되었다. 이때 우연찮게 말에게 매료되고 이때부터 잘못된 애착관계가 형성된다. 알런에게 말은 친구이고 부모이며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또한 절실한 종교인인 어머니와 엄격한 아버지 사이에서 억압되었던 성적욕구의 표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알런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 일주일에 한 번씩 몰래 말을 데리고 나와 벌거벗고 말에 올라타 숲 속을 실컷 달린다. 친구와 수다를 떨며 소통을 하듯, 매주 교회에 가서 예배를 올리듯, 사랑하는 이성과 관계를 나누듯 알런은 말을 통해 채울 수 없었던 욕구를 느끼며 방출하게 된다. 그러나 잘못된 애착관계는 이성과의 정상적인 관계에서의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질이라는 소녀와의 관계에서 성적만족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사람의 피부가 아닌 동물의 피부를 떠올린다. 비정상적인 애착관계는 성적욕구가 성적으로 성숙된 이성과의 정상적인 성관계에서의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물 또는 동물에서 성적만족을 느끼는 변태성욕으로 왜곡되어 나타난다.

또한 알런은 말이라는 동물을 통해 현재 자신에 대한 일탈을 꿈꾸었다. 말을 신과 같이 생각하며 또 다른 완벽한 자신으로 생각하였다. 말은 자신이 바라는 완벽한 자신의 모습이며 그 모습에 희망과 꿈을 대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굿간에서 이성과의 관계를 하려할 때 자꾸 말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이것은 또 다른 자신인 말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일탈하고자 하지만 또 다른 자아로 인한 억압받는 상황인 것이다. 결국 알런은 현실과의 충동과 억압사이에서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스물여섯마리나 되는 말들의 눈을 찌르게 된다. 일탈을 바라던 또 다른 자아를 포기함과 동시에 현실에서 희망이 꺽이게 되어 자신의 눈조차도 찌르게 된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2. 다이사트

알런의 정신과 치료를 담당했던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는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한 완벽을 추구한다. 다이사트는 말투에서 느끼듯이 자신은 성공했다고 자부하며 우월감에 빠져있다. 그러나 알런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다이사트는 자신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의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은 강박적 성격장애로 볼 수 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이 온통 머릿속에 가득 찬 사람이다. 조그만 흠이나 실수도 산더미 같은 죄의식을 생산하는 이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특징과 같이 그는 알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알런의 행동에 휘말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풀지 못한 자신의 딜레마에 빠져 그의 역할을 망각한다. 그리고 완벽하지 못해서 비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알런이 숨기고 싶은 자신의 부부생활에 대해 캐묻자 그는 그 상황을 부정하고 자기합리화를 통해 알런을 정신이상의 환자로 치부한다. 작품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그는 성공과 완벽함을 강요하는 부모님 아래 착실하게 자라며 실패를 모르고 승승장구 컸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패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실패가 두려워 지금까지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살아왔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실패를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결점과 허점을 감추어 상처 받지 않는 방어기재를 가지는 그는 실패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열정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열정을 가지고 했는데 실패를 한다면 그에 돌아오는 좌절감은 너무 클 것이니 말이다. 또한 부인과의 부부생활의 문제점도 성장과정에서 억압되어 온 성적욕구로 인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성적욕구를 부도덕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그것을 자신의 흠으로 여겨 성인이 되어서도 잘못된 욕구 억압으로 정상적인 관계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다이사트는 소년을 치료하게 되면서 소년을 통해 점점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소년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소년의 행동에 흡수되어 가면서 소년이 느낀 감정을 자신은 이제껏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 알런은 말과의 교감으로 종교적인 해방을 찾은 자신과는 달리 열정을 있는 소년이다. 만약 자신이 알런을 치료하게 된다면 알런은 더 이상 지금의 알런이 아닌 현재 자신과 같은 식어버린 알런이 될 것임에 고민한다.

소년만의 신을 제거하고 기계적이고 합리적인 삶으로 다시 데리고 와 결국에는 자신과 똑같은 후회를 되풀이하게 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Ⅲ.결론

알런의 성장과정과 애착형성과정을 살펴보며 한 어린아이의 성격이 형성되기까지 주변 환경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였다. 그 주변 인물들의 심리상태, 가치관, 성장과정 등은 어린 아이의 자아 형성에 크게 관여하여 애착․학대․상처, 변태 성욕, 정신 이상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의식의 부모아래 정상적인 애착관계로 아이와 교감하여 앞으로 커갈 아이의 건강한 자아를 개발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알런의 경우 이 중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자아분열이라든지 변태성욕과 같은 현상들이 생겨났다. 알런이 지닌 병든 자아는 결국 잘못된 양육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일반 기억의 뇌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세계에 기억되었다가 성장과정에서 언제일지 모를 순간에 나타나게 되어 의식 세계에 존재하는 이성을 지배하여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이르게 하는, 아주 큰 영향력을 초래한다. 극단적으로 분열되어있는 알런의 부모님의 종교관이 가치관의 분열로 이어지고 결국 어린 알런에게 정상적인 성장환경을 제공하지 못하여 스물여섯마리의 말의 눈을 찌르는 극단적인 행동을 유발시킨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다. 아직 자아가 확립되지 못한 알런에게 광신도와 무신론자라는 대립되는 상황은 너무 가혹하였을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혼란은 알런에게 에쿠우스라는 말을 자신의 신으로 숭배하며 그 세계 속에 내밀어 버린 것이다.

무의식은 인간이 출생 이후 겪은 경험 세계에 억압 또는 망각된 개인적인 정신활동으로 자아는 의식의 중심으로 이 무의식적인 내면세계에 대한 적응과 외부현실과의 적응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알런의 무의식 세계엔 혼란스런 상황과 채워지지 않는 애정과 신뢰 부재로 인해 병든 자아가 형성되어 버린 것이다.

‘에우쿠스의 알런’이라는 어린 소년의 정신 분석을 하면서 또 한번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힘을 느꼈다. 무의식 속에서 억압, 망각되었던 것은 언제 어느 시기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으로 나타날 지 전혀 예상할 수 없으므로 무의식의 파워는 어마어마한 광야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Ⅳ.참고

․ 피터셰퍼; ‘에쿠우스’.[범우사]

․ 김종만(1999); ‘나’-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한림미디어]

http://www.jongmankim.pe.kr

http://www.psytherapist.pe.kr

․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홈페이지 (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