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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페르' 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지옥'이라는 뜻이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 때문에 평생 동안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담긴,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는 좋은 영화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정신분석적인 이론을 잘 아는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나리오 그 자체가 고대 그리스의 신화 "메디아"의 이야기와 "뻐꾸기의 새끼 양육"을 접목해서 이야기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분석 학에서는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악한 어머니의 상으로 뉴욕 의과 대학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 학자인 센골드(Shengold, 1999)는 오디프스의 엄마인 "자카스타"와 "메디아"를 들고 있다. 자카스타는 오디프스를 산에 내다 버린 엄마이고 이 오디프스가 자라서 성인이 되어 엄마와 결혼을 한 것을 알고 자신의 눈의 빼어 버리고 평생도록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만든 엄마이고, 메디아는 남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했지만 결국 남편의 배신을 복수하기 위해서 남편의 두 자식이자 그녀의 자식인 두 자녀를 재물로 희생시켜서 남편의 대를 끊어 버린 엄마이다. 우리는 어머니의 모성애가 어머니 자신을 희생시켜서 자식을 구해내는 헌신적인 희생적인 면이 엄마의 본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은 여성의 질투심을 보여주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라는 말을 대표하는 엄마들이다. 뻐꾸기 역시 자신이 자식들을 양육하지 않고 다른 새들의 둥지에서 새끼를 낳아서 양육을 위탁하는 것에서 자식을 낳고는 떠나 버리는 자식 양육을 포기한 유일한 새라는 점에서 유사점을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심리적 상처는 대물림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이 자녀들에게 주는 영향을 그래도 보여준다. 남편과 부인 사이에 의사 소통의 단절 때문에 자식들 역시 성장해서 결혼을 해서 남편과 의사 소통 문제, 혹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 문제로 고통 속에서 고립 속에서 외톨이로 살 게 되고 또 부모의 문제를 그대로 반복해서 겪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큰 딸 '소피'와 남편 '지께'는 서로들 간에 의사 소통에 문제가 있음을 모르고 있다. 소피는 그녀의 감정을 엄마가 했던 그대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지 않고 행동으로 표현한다. 남편이 그녀에게서 무엇인가 불만족 때문에 외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또 그것을 찾아서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결혼 이후에 쌓인 분노와 적대 감정 등을 행동으로 표현해서 자녀들을 무기로 삼아서 남편을 집에서 내 쫓아 버린다. 결국은 소피의 엄마가 했던 방식 그대로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을을 볼 수 있다. 남편을 의심해서 미행하고 증거를 찾으려고 하는 소피의 행동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자살의 원인을 찾으려고 혼자서 끝없이 상상 속에서 흔적을 찾았던 것에서 싹이 트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혼자만의 상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잘 보여준다. 의사 소통이나 대화가 잘 되지 않아서 고민하거나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혼자 만의 상상 속에서 온갖 증거와 해결점을 스스로 찾으려고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이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생각을 세상의 틀에다 맞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자신의 생각의 틀에다 맞추려고 하는 의심증, 의처증, 의부증 즉 정신 의학적 용어로 "편집증"의 원인이 된다. 소피 한데서 이러한 의심과 궁금함이 끝없는 남편의 의심으로 남편의 뒤를 케는 의부증으로 나타났고 이 갈등 들이 결혼 초반기부터 남편과 솔찍하게 풀어왔었다면 외도와 부부 갈등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둘 째 딸 셀린느는 아버지와 제자 사이에 불륜 관계의 오해 현장을 직접 목격한 장본인이다. 고로 어머니를 이해하고 요양원에 어머니를 돌보는 딸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중년을 넘어선 이후에야 알 게 되었다. 아뿔사! 어이할꼬! 세월은 이미 인생의 황금기인 사춘기와 성인 초반기를 훌쩍 넘겨 버렸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거의 없는 외톨이 생활에서 오는 불면증과 우울증이 그녀의 유일한 친구가 된지 오래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상처의 영향으로 대인관계를 끊어 버렸다. 불행의 원인이 섹스 문제임을 알고 특히 이성 관계를 단절해 버렸다. 혼자서 고립 속에서 어머니처럼 유사한 삶을 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친밀감이나 대인관계가 없다. 철처하게 고립으로 외톨이로 생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상처를 수치심으로 내면 속에 가두어서 그 비밀이 탄로나지 않게 철저하게 침묵으로 비밀로 감추어온 것이다. 왜 친밀감을 피하게 되는가? 상대와 친밀하게 되면 자신의 내면의 비밀이 들통이 나게 되니까! 자신의 수치심이 드러나게 되어 자아 붕괴로 연결될까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니인 소피처럼 혼자서 상상 속에서 갈등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불면증에 걸려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불면증의 원인이 혼자서 너무 많은 생각에 빠져서 과도하게 뇌를 활동하게 만들어서 생기는 병이 아닌가! 그녀는 유일하게 기차를 타면 불면증이 해소 된다고 했다. 기차를 타면 그 순간에는 기차 소리와 기차 안에서 사람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 보는 주변 풍경에 마음의 에너지인 주의와 관심이 이곳에 집중이 되어 혼자서 상상 속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임을 그녀 자신은 모르고 있다. 기차를 타는 것이 수면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단지 기차만 타면 잠이 온다고 기차 속에서 불면증을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딸 안느는 아버지의 자살 현장으로 달려간 유일한 딸이었다. 막내 둥이로써 아버지와 관계가  좋았고 아버지의 죽음을 가장 마음 아프게 간직하고 있는 딸이었다. 그녀는 성숙해져 성인이 되어가면서 어린 시절에 박탈당한 아버지의 사랑을 되찾으려고 하고 있음을 본인은 모르고 있다. 고로 아버지와 유사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아버지처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에다 가족을 가진 유부남에다 나이가 아버지 뻘이 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결국은 그 사랑에 대한 집착이 아버지처럼 프레데릭 교수를 자살하게 만든다. 연인과 배우자의 사랑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과는 다르다는 것을 안느 자신은 모르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기 바란다.

 왜 하필 아버지와 유사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결국 그 사랑은 파멸로 이어지는가? 하는 것을 더 상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그 사랑을 채워 넣기 위해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 부모와 유사한 사람을 선택한다는 정신분석에서 유명한 "고착" 이론을 참고로 하기 바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자살한 이후에 그 상처를 철처하게 함구하게 하고 자녀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금기시한 것을 볼 수 있다. 고로 세 자매는 아버지의 비극을 서로 이야기하거나 궁금증들을 표현하지 못하고 상처를 마음 속에서 묻어 버리고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수치심과 고통의 상처를 비밀로 영원히 마음 속에 묻어 버리는 것이 이후에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을 때 세 자매들 사이에 관계에서 드러나고 있다. 서로 관계가 단절되어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 지도 서로 모르고 살고 있다. 큰 딸한데서는 상대를 의심하고 미행하는 행동으로 둘 째 딸 한데서는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래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스스로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서 혼자서 판단하는 스타일의 행동으로 세 번째 딸 안느 한데서는 유부남과의 불륜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혼자서 해결하고 고민하는 것으로 결국은 프레데릭 교수가 자살한 후에 친한 친구에서 이야기를 해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신들의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려서 마음을 터 놓고 자신의 비밀들을 이야기를 하는 친한 친구들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 가족들의 상처를 비밀로 하는 침묵이 강간, 겁탈보다 더 무섭다라는 말은 "사랑과 추억" 속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하는 말이다. 가족들 사이에 상처를 금기시 하고 비밀로 한 것이 자녀들에게 어떻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더욱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사랑과 추억"의 영화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기 바란다.

 이 영화에서 딸들에게 상처를 가져단 준 어머니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남편의 자살과 가족 붕괴의 상처 때문에 실어증에 걸려서 평생을 요양원에서 보낸다. 실어증은 심리적인 상처로 인해서 생긴 증세이고 이런 실어증은 정신분석에서 다루는 단골 매뉴로 나와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고통을 내면 속에서 억압해서 자아를 처벌한 것이다. 자신을 불구로 만든 것이다. 여기에서 어머니는 아버지와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을 상징하는 그녀의 입을 닫아 버리고 말을 하지 않는 실어증으로 그녀의 성격적 결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는가! 즉 "나는 의사 소통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입니다!"

 어머니와 그녀의 세 딸들 모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통을 억압하고 다른 사람들과 그 고통을 나누지 않고 평생을 살아가면서 외톨이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부모 결함의 대물림을 보면서 왜 어머니나 세 딸이 심리 치료를 받지 않고 스스로 불행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가? 결국 자아를 알려고 하지 않고 자아를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도록 자신의 불행을 운명으로 여기고 한번 뿐인 삶을 허송 세월을 할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는 영화이다.

이 영홯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현대 사회에서 심리치료나 정신분석의 필요성을 재 인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