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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프리데 옐리네크(Elfriede Jelinek)의 작품 "피아노를 치는 여자"는 2004년도 노벨 문학상 작품으로 "독일의 독문과 대학원 강의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현대 작가의 하나"라고 번역자는 밝히고 있다. 이 작품은 정신분석적으로 분석이 되어질 수 있고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이 아니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분석적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주인공 코후트는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볼 수 있다. 자녀가 부모님의 소유물처럼 다루어지고 부모님의 대리만족의 도구로써 자라나면 결과가 어떻한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 자라나면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가?를 보여준다. 어머니는 남편 대신에 딸을 가까이 밀착 시켜서 어머니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실현시키려고 어린 시절부터 피아니트가 되라고 혹독한 훈련을 가한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어머니의 꿈이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딸인 코호트는 자신의 자유로움을 반납하게 된다. 강제로 피아노를 쳐야 하고 오직 피아노만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모든 욕구들을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 때문에 유보를 당한다. 사춘기에 이성을 사귀는 것도 사치품으로 매도 당한다. 어른이 되어서 성공하면 얼마든지 좋은 배우자와 결혼을 해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오직 피아노만 치는 것에 열중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세뇌에 굴복하고 만다.

 어머니는 남편이 일찍 정신병원으로 실려가고 얼마되지 않아서 사망하게 되자 남편의 자리에 빈 외로움을 딸로써 채워넣게 된다. 딸인 코호트는 엄마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된다. 유아기 때는 자연스러운 행동 이지만 사춘기가 넘어가고 성인이 되어가는 데도 코호트는 엄마와 한 침대에서 생활하게 되고 딸의 섹스적 욕구는 감시 당하게 되고 어머니의 섹스 대상이 되어 서로 몸을 애무하고 몸을 만지고 흥분을 유발한다. 따라서 딸의 섹스 욕구가 정상적으로 발달을 할 수가 없다. 이러한 결과는 코호트가 성인이 되어 변태성욕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한가지 변태성욕적인 행동만 가진 것이 아니다. 관음증, 새디즘, 마소키즘 등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변태성욕의 종류와 특징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그녀는 성인이 되어서 정상적인 섹스 관계를 가질 수가 없다. 그의 연인인 피아노를 배우는 10살 아래의 제자와 섹스 관계를 정상적으로 가질 수가 없다.

 어머니가 딸의 분리-개인화를 허용해주지 않고 엄마와 하나된 관계를 고집했기 때문에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분리-독립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은 정신분석에서 너와 나의 하나됨의 이론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자녀가 자라면서 점차로 독립된 개인으로 홀로서기로 발달해 가야 하는데 부모가 이것을 허용해주지 않게 되면 자녀는 부모와 하나됨으로부터 분리 개인화될 수가 없다. 그녀는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로부터 독립을 하지 못하고 함께 살고 있다. 연인을 만나서 사랑을 할 수가 없다. 연인을 마치 자신의 하나됨으로 지각되기 때문에 연인은 질식해서 도망을 가게 된다. 결국 그녀는 사랑을 할 수 없어 사랑에 실패를 하고 다시 어머니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이 이것을 말해준다.

  어머니와 분리는 엄청난 불안과 두려움을 야기한다. 고로 엄마에서 분리되어나올 수가 없다. 사랑과 같은 친밀관계는 엄마와 하나됨의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하게 되면 자아의 질식과 자아의 소멸을 느낀다. 고로 거리감을 두려고 한다. 거리감은 공허함과 버림받음의 느낌으로 다시 밀착 관계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결국은 가까워지면 질식과 자유가 없음의 두려움이 생기고 반대 방향으로 거리감을 두려고 하면 외로움, 고립을 경험한다. 이러한 것의 반복된 결과로 상대는 떨어져 나가 버리고 홀로 고립으로 버림받음으로 남게 된다.

 오티스프 콤프렉스의 미 해결로 코호트는 결국 엄마에게 아버지의 대역을 맡게 된다. 돈을 벌어서 엄마를 부양하고 한 침대에서 엄마의 섹스 파트너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녀의 욕구는 찾아볼 수 없다. 그녀는 엄마의 욕구 만족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엄마의 어린 시절의 꿈인 이름난 피아니스트가 되어야 하고 엄마와 가까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친구들을 제대로 사귈 수가 없다. 이성과 사귀는 것은 금기시 되어있다. 엄마가 그것을 허용해주지 않는다. 엄마가 이성과 사랑을 허용해주게 되면 엄마는 외토리로 홀로남아야 하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고로 딸과 밀착된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자신만큼 딸을 위하고 딸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는 확신으로 딸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었다. 그녀의 자신의 삶을 딸인 코호트에게 걸었다. 결과는 둘다 밀착에서 떨어져나올 수가 없다. 딸인 코호트는 "나"인 자아가 거의 없다. 내 욕구를 만족 시키기 위해서 옷이나 장신구를 사면 어머니로부터 가차없이 처벌이 따라왔다. 마음대로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마저 살 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도 없다. 오로지 엄마가 원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서 정진하는 길밖에 없다. 결국은 성숙한 성인으로 자라지 못하고 사랑을 할 수 없고 정상적인 섹스를 가질 수 없는 기형적인 사람이 된 것이다. 변태성욕자에다 사랑을 할 수 없는 여자가 된 것이다.

 코호트는 철저하게 엄마의 소유물로 자라났다. 그녀의 욕구는 언제가 뒷전에 밀렸다. 사춘기에 이성을 사귀고 싶고 화장품을 사저 화장을 하고 싶고 이성으로부터 주의 관심을 받고 이성과 사랑을 하고 싶고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우정을 개발하고 싶은 욕구들을 철처하게 외면을 당하고 오직 성공과 명예와 출세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반납한 결과는 기형적인 병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전략하고 피아니스트의 꿈도 중도에서 좌절하고 겨우 피아노 학원의 피아노 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코호트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까?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못다이룬 한 풀이의 대상으로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 미술 학원, 여기에서 전 과목 학원 수강 등에 내몰리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여기에다 일유 학교, 일류 대학에 가야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없이 명문 대학과 성공과 출세에 목이 메인 부모님의 욕구 만족의 대상으로 사라나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이렇게 성장해서 성인이 된 후에 성격 결함으로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가면서 사랑을 할 수 없고 정상적인 섹스를 가질 수 없는 변태성욕자로 전략해서 평생동안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