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증은 갈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갈등은 욕구의 방출에 장애물이 생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감정에 목이 졸린 것이다

ego가 긴장에 대응해 나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비 자발적 방출이 신경증의 증세가 된 것이다

- "정신분석의 기법"에서 -

---UCLA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정신분석학자, Ralph R. Greenson---

 

 열등감, 과거의 상처, 왕따, 문제에 직면, 대인공포증, 광장 공포증, 자아 주체성 형성, 친밀감, 질투, 의심, 인종 차별, 대인관계에서 감정의 중요성 등의 전문 용어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알게 해주는 영화로 정신분석적인 내용을 닮고 있는 영화이다. 흑인 소년인 자말이 백인 작가 포레스트를 만나서 서로가 마음을 열고 친밀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어떻게 해야 마음을 열 수 있는지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자말이 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숨기고 동료들에게는 평범하게 대하는지를 후반부에 가면 이해가 된다. 흑인으로써 선생님들에게 인정을 받기 어려울 것이고 동료들에게 이질감을 안겨주면 친구들로부터 소외될 것이라는 것을 자말을 알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소년이다. 만약 자말이 나르시즘적인 요인을 가지고 있었다면, 자신의 재능을 떠벌리고 지나치게 과장되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했다면 결과는 뻔했을 것이다.

  그 실제 예가 바로 후반부에서 대입 명문학교에 전학해서 크리포드 교수로부터 받는 시기와 질투이다. 크리포드 교수는 작가 포레스트에게 추월당한 수치심, 복수심이 심층에 자리잡고 있어서 항상 자신의 실력이 도전을 받게 되면 그 수치심을 건드리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없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크리포드와 같은 나르시즘적인 사람들이다. 아이러니갈 한 것은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최고라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최고로 대우받고 있지 않다는 것이 모순이 아닌가!

 크리포드 교수가 작가로 인정을 받지 못한 결정적 사실은 바로 자신의 나르시즘 때문에 발목이 잡혀서 절정을 눈 앞에 두고 하산하고 만 꼴이 된 것을 자신은 모르고 있다. 나르시즘적인 사람은 적대적 경쟁을 하는 사람들이다. 현대 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경쟁이 선의의 경쟁이 되어야 한다. 상대를 친구로써 인정하고 서로 도와가면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친구도 얻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정 반대가 되면 적대적 경쟁이 된다. 상대를 적으로 보고 상대에게 정보를 숨기거나 상대를 피하게 되면 친구도 잃고 결국 목적 달성을 하기 어렵게 된다. 가장 좋은 예가 전교 1등이나 학급에서 1등을 한 학생들이 동료들을 의식하고 1등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빠지게 되면 불안해지고 공부가 머리 속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게 된다. 1등 불안이 마음의 안정을 해치게 되어 강박적으로 되어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결국은 1등에서 탈락하게 되고 이후에는 동료들을 피하게 되는 예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v크리포드 교수는 심층에 열등감이 자신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매달리게 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도전을 받게 된다고 생각되면 그 순간은 무의식적으로 과거 포레스트에게 패배한 생각에 참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을 자신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 수치심의 욕구에 제동 장치를 걸 수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과는 폭발로 이어진다. "나를 무시했어", "감히 나에게 도전장을 던져!" "너 같은 애숭이가 나를 가지고 놀아!"가 된다.

 포레스트가 왜 대인 공포증이 되었는지, 광장 공포증이 생겼는지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알 게 된다. 형님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 아버지와 어머니가 형님의 상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결국은 몇 개월 사이로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겪게 되자 연속된 엄청한 상처에 휘말려들어가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이다. 포레스트는 이미 어린시절부터 마음에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님이 두 분다 형님의 상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자녀는 부모님을 닮는다. 부모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면 그 결함은 자녀에게로 대물임 되어짐을 보여준다.

 포레스트와 자말이 서로 어떻게 마음의 문을 열 게 되었을까? 포레스트는 자말의 노트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그 노트에 갈려쓴 문장들을 보고 글 쓰기에 재능이 있음을 간파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미 포레스트는 자말에 무의식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여러번 거절했지만 자발의 습작 노트에 주를 달아 놓은 것 자체가 바로 그것을 입증해준다. 자말은 포레스드를 만나서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었다. 자말은 마음 속에 비밀을 담아놓지 않았다. 포레스트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자말이의 인간 관계에서 포레스트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장점을 자말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대인관계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발휘를 하지 못하고 있는 소년인 동시에 자신에게는 없는 장점을 가진 소년이 바로 자말이 아닌가! 포레스트는 바로 자신의 모습을 자말에게서 본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일치 동일시를 보인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거울처럼 비춰서 보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재능 때문에 끌린 것은 2차적인 것이고 자말의 "진실된 인간 관계"가 포레스트가 끌린 것이다. 포레스트에게는 귀중한 보물이었다. 자신에게 없는 귀중한 보물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포레스트는 자신의 과거를 철저하게 숨기고 살고 있다. 그 결과는 은둔이고 광장 공포증이다. 밖에 나가기를 거부한 것이다. 밖에 나가면 자신의 비밀이 노출되고 사람들은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자신의 가족 문제도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작품에서 인생 문제를 논의할 수 있겠는가?" 에 족쇄가 걸린 사람이 바로 포레스트이다. 이 말은 후반부에 형님이 죽어갈 때 간호원이 포레스트가 바로 그 유명한 작가라는 것을 알아보고 한 말에 충격을 받아서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고 자신의 입으로 실토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두려워해서 자연히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지 못하게 은둔해서 사는 대인공포증으로 연결된 것이다.

 대인공포증, 광장 공포증이 해결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적어도 두 사람 사이에는 비밀이 하나씩 노출되어 간다. 서로가 자신을 숨김없이 마음을 열어간다. 자말은 스승 포레스트의 과거를 다 알 게 되고 포레스트 역시 자말의 현재, 과거를 다 알 게 된다. 그 결과는 친밀관계로 연결된다. 친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을 여는 것임을 보여준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포레스트는 작가가 되려면 초고는 가슴으로 쓰고 재고는 머리로 쓴다는 말을 해 준다. 감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포레스트 자신은 대인관계에서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차단했기 때문에 대인공포증이 생긴 것을 모르고 있다. 자신이 강조하는 감정의 중요성은 작품에서만 강조했지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에 대한 감정을 억압해서 마음 속에 쌓아 놓았기 때문에 인간 관계가 깨어진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 감정이 자말과의 관계에서 녹아 내리기 시작해서 결말은 대인 공포증에서 벗어나게 된다. 자말에게 형님의 사망과 부모님의 사망에 대한 이야기를 다 할 수 있게 되었고 자말의 감정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자말은 포레스트를 형님과 자신이 좋아했던 양키 스타디움에서 야구 결승전을 다시 재연 시켜준다. 이것이 정신분석학에서 직면(confrontation) 혹은 대면이라고 부른다. 과거의 상처를 재연해서 그것을 뚫고나갈 수 있게 (working through)해 주는 것이다. 이 직면을 거치면서 포레스트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 자말이 치료자 역할을 한 것이다.

 자말과 포레스트의 진실된 인간 관계가 두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증거는 자말이 쓴 작문의 제목에서 잘 나타나 있다. "신념이 익는 계절"이라는 제목은 "믿음이 머물어가는 계절"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훨씬 독자에게 공감을 주었을 것이다. 포레스트는 자말의 인간 관계를 배운 것이다. 그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거울처럼 비친 것을 본 것이다. 자말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자란 것을 알 수 있다. 자말의 형님이 빈민가의 환경에서도 불평없이 주차원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고 형과 동생의 관계에서도 건강한 사랑이 넘치는 가족임을 볼 수 있다.

 어머니가 아들 자말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있고 자말은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감이 높았고 그 자신감이 동료들과의 담력 시험에서 우연하게 포레스트라는 스승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는 것을 메그놀리아라는 영화가 보여주었다. 포레스트와 자말의 만남은 우연히 아니다. 서로의 무의식적인 욕구가 서로 일치되어 서로에게 끌리게 된 것이다.

 자말이 결정적 위기에서 포레스트를 배신하지 않고 스스로 그 고통 즉 퇴학, 농구 선수로 참패 등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그리고 스승에 대한 인간적 배려 즉 스승의 문제 핵심을 해결해 주려고 양키 스타디움에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포레스트의 소원을 들어준 점 등은 포레스트가 제자 자말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하고 문학가로 키워주려고 돈 한푼 받지 않고 따뜻한 사랑을 아낌없이 제공한 점 등을 고려해 보면 서로의 무의식이 연결되어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진실된 인간관계는 이후에 스승과 제자로써 영원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포레스트는 죽음에 임박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과 자신의 서적을 자말에게 넘겨주게 되고 자말은 스승의 마지막 작품을 출판해서 포레스트의 유고 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게 된다. 포레스트는 비록 죽어서 이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자신을 닮은 자식 즉 핏줄은 아니지만 자신의 후계자를 키워놓지 않았는가? 핏줄이란 반드시 혈족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님은 포레스트가 마지막으로 남긴 자말에게 쓴 편지에서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