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저번 꿈의 해석을 쓸 때에도 그랬지만 이번 역시 처음에 접근하기가 어려웠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왠지 모를 어려움과 부담이 아주 크게 느껴졌다. 어떤 영화를 선택해서 봐야 할까? 내용이 너무 지루하고 어렵진 않을까? 하는 걱정 속에서 4개의 영화 중에 그나마 제목을 들어본 듯하고 쓸 내용이 많을 듯한 느낌이 드는 “매그놀리아” 로 선택하고 비디오를 빌렸다. 그런데... 상·하편 두 개라니... 시작부터 어려움을 예고하는 듯 했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본 듯 했다. 잘 생각해 보니 예전에 TV에서 본 거였다. 잘 선택했다는 안도의 한 숨도 잠시, 편하게 그냥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갖고 주의 깊게 보려고 하니 뭔가가 나를 조이는 듯한 긴장감이 들었다. 영화를 좀 더 쉽고 빨리 이해하기 위해 보기 전 미리 인터넷에서 충분한 자료를 찾아서 읽어보고, 또한 인간 심리의 이해에 관한 여러 책을 읽어보았다. 또한 사람들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와 배경, 암시하는 듯한 여러 모습들에 집중하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몇 번이고 되돌려 가며 보고 중요한 대사를 종이에 적어가면서 보았다. 여자 친구는 같이 보면서 재미없다며 옆에서 졸고 있지만, 3시간이 넘게 참으며 다 보고 난 후의 느낌이란...뿌듯함! 대단한 것을 얻었다고 할까? 다른 영화도 좋을 수 있겠지만 매그놀리아를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이 영화를 만난 것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만큼 이 영화는 정말 명작이라 느낀다. 황폐하고 삭막한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정과 사랑은 우리들의 맘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들의 맘속에서 정과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난해하고 얽히는 사건들이 해결되면서 이 모습을 발견하고 희망을 가지게 한다.

  그러면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무엇을 표현하고 나타내고자 했을까? 그런데 왜 제목이 매그놀리아 일까? 또 얽히고 설킨 등장인물들의 관계들, 마지막을 장식하는 개구리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하는 의문이 많이 남는다.

  단순한 구성으로 나열되는 드라마 같기도 하지만 상처 입은 9명의 등장인물 각각의 삶의 고통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담아 3시간이 넘는 긴 상영시간을 가진다. 조금은 난잡하고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는 영화다. 인간성과 인간관계의 단절, 인생의 기회가 만들어 주는 우연한 연결이라는 주제를 어둡고 힘있게 전달한다. 그런 주제로 인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게 나타난다. 현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각종 불편한 것들 암, 섹스, 어린이 학대와 근친상간, 마약·약물 복용, 자살, 등에 대한 위기감을 엿 볼 수 있었다.

  영화는 로스엔젤리스의 한 지역의 매그놀리아라는 거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비가 내리는 24시간의 흐름 속에 9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각각의 삶의 모습이 비쳐진다. 이들 등장인물들의 비극은 모두 가족관계에서 비롯된다. 아버지와 그 죄 값을 대신 치러야 하는 나머지 가족의 모습은 절망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지막 클라우디아와 짐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들이 상처를 받고 불행을 받은 곳이 가족이지만 그 모든 불행과 죄를 씻어 줄 구원의 수단 또한 가족이라는 것은 가족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이 없다. 9명의 각기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등장인물들이 얽히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관계로 잘 따라잡지 못하면 약간 혼란스러운 점이 없지 않지만, 그런 혼란스러움마저도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아픈 상처들의 깊이를 더해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런 것을 맘속에 간직하고, 이제 필자는 등장인물 몇 명의 각각의 심리를 분석하고자 한다.

Ⅱ. 본 론

A. 등장인물의 심리 분석

  영화 전체적으로 퀴즈프로 제작자와 진행자와 참가자인 사람들과 그 주변 사람들,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해자인 아버지와 피해자인 자식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아내를 배신한 얼, 자신의 딸을 범한 후에도 꾸준히 사회적 명성을 잃지 않고 생활하는 지미, 탐욕으로 아이들을 억압하는 스탠리와 도니의 부모, 이러한 부모들에 의해 삶의 방향을 잃은 자식들은 피해자로 삶을 살아간다.

  한마디로 이 영화 매그놀리아는 가족에 관한 영화다. 영화에서 가족들이 등장하지만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버렸거나 그들을 억압했으며 유무형의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이다. 잭(프랭크 매키)은 어머니와 함께 버림받았으며, 지미는 딸에게 근친상간이라는 멍에를 씌었다. 과거의 퀴즈 왕과 지금의 퀴즈 왕은 모두 아버지에게 돈벌이의 도구일 뿐이다. 이들은 모두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는 사람들이다. 모두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회한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이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번갈아 보여준다. 영화는 갈수록 어려움과 괴로움을 보여준다.

  이들은 혈연과 지연, 시간과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방송계 재벌과 그의 젊은 아내, 그가 버린 아들, 그를 돌보는 간호사, 30년 넘게 퀴즈 프로그램을 진행한 진행자와 그의 부인, 그가 근친 상간한 딸과 그녀를 사랑하는 경찰, 그의 퀴즈쇼에 참가한 꼬마 천재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30년 전 그 자리에서 퀴즈 왕이었던 한 남자, 이 등장인물들의 상처는 단 하룻밤 사이에 이해와 용서로 아물게 된다.

  영화의 큰 축인 죽어 가는 두 아버지를 중심으로 주변인물 등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분석해 보자.

1. 얼 패트리지

  영화 내용의 축이 되는 두 아버지 중 한 명으로 아들 프랭크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또 한 명의 아버지인 지미가 사회를 보는 장수 퀴즈쇼 프로그램의 제작자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기 암환자로 전락한 지금 그는 남은 생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는 14살의 어린 아들에게 아내를 맡기고 떠나버린다. 그리고는 젊고 예쁜 린다를 새 아내로 맞이한다. 세월이 흐른 후 생이 얼마 남지 않아 아내와 아들을 버린 씻을 수 없는 회환을 가지고 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절실하게 후회라는 것을 한다. 죽음이 다가오자 비로소 자신의 순간적인 이기심으로 가족들이 상처받았다는 걸 깨닫는다. 살아 있다면 어딘가에서 자신을 증오하고 있을 생사조차 모르는 아들을 만나고 싶어한다. 강력한 몰핀으로 고통을 억제하며 침대 위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는 간호사에게 자신의 아들 잭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내 인생은 후회 그 자체다. ’ 라는 남자 간호사에게도 후회 할 일은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한다. 후에 아들 프랭크(잭)가 찾아왔을 때에는 말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 진다.

《분 석》

☞ 얼이 아내와 아들을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얼의 삶에 있어서 과연 무엇이 가장 중요했는지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행동 당시 그에게는 돈이 인생의 목표였고 그 부를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조차도 거추장스러운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단지 조금의 양심이라도 있었더라도 이런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교육은 인간을 양심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불의를 보고 외면하고 회피하거나, 분명 옳지 않은 일인데도 얼과 같이 아내와 자식을 버리는 행위를 한다면 교육이 된 것이 아니다. 행동하는 지성인의 모습을 얼에게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그 당시에 바로 아내와 아들을 찾아 나섰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없고, 그가 죽기 얼마 전 아들을 찾는 것은 단지 아쉬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죽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착해진다고 한다. 죽은 후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곳에 가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덜어버리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개 죽기 전에 나쁜 사람들이 변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죽도록 미워하고 증오했던 상대지만 죽기 전 짧은 순간이나마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에서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얼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져버린 사람이다. 그 당시 그의 맘속에 자리잡은 것은 부와 권력을 쥐고 싶은 욕망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따라서 예전 진심으로 사랑했을 아프고 병든 아내보다는 지금의 젊은 여자를 선택하게 만든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얼을 지배한 생각들이 인간적인 양심마저 사라지게 한 것이라 본다. 보통의 남자라면 자신이 선택한 아내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런 행동을 하진 못 했을 텐데... 자신만의 기준에 맞추어 나름대로 비교한 끝에 이런 결정을 내린 거라 생각한다. 그 기준이나 비교의 대상이 옳지 않거나 잘못되었을 것이다.

  보다 얼의 정확한 심리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의 어린 시절이나 그런 결정을 가능케 한 사건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는 정상적인 사람으로선 생각하기 힘든 행동이기 때문이다. 얼의 부모 또한 얼처럼 이혼하고 비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했고 그 밑에서 자라났다면 오히려 반대로 가정에 열심이었을 텐데, 이런 문제가 아니라 얼의 가정환경이 빈곤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난 속에서 그것을 잊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따라서 자연스레 돈과 명예가 그의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악착스레 노력해서 성공을 위해 살다보니 가족에는 관심이 적어 진 것이다. 지나친 집착으로 아내에 대한 인격적인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자식들과의 관계 또한 멀어진 것이다. 한 사회의 성인으로서 사회적인 책임을 다했다고는 할 수 있으나 사회의 가장 기초가 되는 가정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아니 자신이 이를 저버린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본다.

2.프랭크 매키(잭)

  암으로 고통받으며 죽어 가는 어머니를 어린 자신에게 맡기고 홀로 떠나버린 아버지 얼에 대한 증오심을 안고 많은 시간을 살아왔다. 14살이라면 어느 정도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다. 더구나 사춘기 시절의 이런 충격적인 경험은 그 자신에겐 크나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감당할 수 없는 결정적인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잭은 먼저 성과 이름을 외가 쪽과 외할아버지 이름으로 바꿔 버린다. 그리고 가짜 가정환경 기록을 만들어 지난 흔적을 지우려고 애쓴다.

이런 프랭크가 자라서 남자들에게 여자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방법을 강의하는 유명한 명강사가 된다. 어머니와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수컷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는 ‘여성 공략법’ 강사의 모습은 정말 아이러니 하다. 마치 교회의 부흥회 속에 있는 듯 열정적인 무대의 모습을 보인다. 이런 그의 모습은 잘생긴 외모와 섹시한 몸놀림으로 완벽하게 무장되어 있다. 여성을 유혹하는 것으로 섹스-구루(Sex Guru)란 명성을 얻은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아버지와 결별한 채 아버지가 누린 명성을 뒤집는다. 여자에게 매달리며 구걸하는 사랑을 버리고,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여성을 택하고 길들이는 법을 가리키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당당하고 매력적이지만 아픈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프랭크는 그토록 증오하는 아버지의 존재인 남성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스스로 아버지 부재에 대한 혼돈의 모순에 빠져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강의에 바쁘게 생활하던 중에 한 기자와 인터뷰를 할 기회를 갖는다. 그는 “과거는 돌아볼 필요가 없다. 그저 앞으로만 가야한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기자는 프랭크와의 인터뷰를 사전 준비하면서 프랭크의 과거를 많이 조사해와 지난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자신의 존재는 자신의 가족사에서 쉽게 알 수 있다고 한다. 기자의 다른 질문에 관련해서는 아주 솔직히 정직하게 답변하지만, 과거의 모습에서는 거짓을 말한다. 이때 프랭크의 심적 변화의 모습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기자가 거짓이라며 진실을 요구한다. 처음엔 기자의 질문에 그리 개념 치 않는 듯 웃음으로 간단히 답을 하지만 갈수록 더 집요해지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불만을 토로한다. 치밀한 조사에 의해 자신의 과거를 알아내려고 하자 불쾌감이 커지고 덮어두고자 했던 과거가 또 다시 떠오르자 힘겨워 한다. 당당하고 자신만만해 보이는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상처이자 약점은 바로 '아버지의 부재'였던 것이다.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였지만 죽기 전 자신을 찾는 아버지를 차마 외면할 수 없는 그도 결국은 여리기 그지없는 부모의 '자식'이다. 이후 대화자체를 거부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