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단계는 치료자와 환자와의 안전한 관계의 형성에서

상처의 기억을 재구성한다

과거의 상처 이벤트와 현재의 증세의 의미를 연결해서 이해 시키고

그 상처들을 통합해 나가는 것이다

-  상처와 회복"에서 -

 

 성공 제일주의에 집착해서 시간에 쫓기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40대의 중년들이 정작 자신이 왜 살고 있는지를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는 영화가 바로 이 키드(The Kids)라는 영화이다.

  돈만 벌면 행복한가? 성공한 사람이라면 어떤 조건이 먼저 갖추어져야 하는가? 에 의문을 던져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정신분석 치료의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이다. 어린시절의 상처가 어른이 되어서 지금 현재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대부분이 모른다.

 주인공 러스는 어린시절에 어머니의 사망이 자신의 잘못 때문으로 알고 항상 자신을 학대하고 있음을 모른다. 안면 근육 경련증이 바로 어머니의 죽음에서 울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억압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눈깜작할 사이에 벌써 40대의 중년이 되어가고 있음을 자신의 어린시절을 비추어 봄으로써 알 게 되고 자신의 안면 근육경련증에서 벗어나게 된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경직되고 아버지는 자신에게 해 준 것이 별로 없는 단순히 어린시절의 아버지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면서 아버지의 방문을 바쁘다는 핑계로 냉대하게 된 뒷면에는 어린시절에 아버지로부터 "빨리 어른이 되라"는 다그침과 질책이 있었다는 것을 알 게 되면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친밀관계로 개선되어간다.

 러스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징징대며 짜는 것임을 여러 사람들과의 대인관계에서 알 수 있는데 이는 어린시절에 아버지로뿌터 징징대며 짜지 말라는 처벌에서 온 것을 알 게 되면서 그 문제로부터 벗어난다. 어린시절의 꿈이 비행기 조종사였고 결혼해서 예쁜 아내를 두고 개를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겠다던 꿈이 어디로 사라지고 지금은 시간에 쫓기면서 하루를 보내는 그날그날을 생각없이 보내고 있는 것들도 또 학창 시절에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것들도 모두 어린시절에 있었던 상처 때문이었음을 알 게 되면서 러스는 다시 자신의 꿈을 되찾고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살게된다는 이야기 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이러한 관계 형성이 어린시절에 골격이 형성된다는 것이 최근의 학자들의 연구 결과 공통된 지적이다. 어린이의 뇌가 어른 뇌의 90%가 되는 시기가 5세 경이었다. 어린이의 뇌가 어른 뇌의 95%가 되는 나이가 7세 때였고 어린이의 뇌가 어른 뇌의 97%로 발달하는 시기가 10세 때였다. 이러한 연구는 신경과학자들의 생리학 실험실에서 뇌 세포를 카운터하는 과학이 발달 하면서 나온 최근의 연구 결과이다(Eliot, 1999). 어린시절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우리는 어른시절의 경험이 첨가 되면서 성장과 발달을 거듭해 간다.

 어린시절의 상처 경험을 알고 그것이 현재에 어떻게 연결되어있나를 분석해 내는 것이 정신분석의 핵심이다. 자신의 자아 결함이 어떻게 현재에서 작동하고 있는가를 알 게 만들어주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이다. 이 영화는 심리치료자나 정신분석 학자가 나오지는 않지만 과거의 자신의 자아와 대면으로 자신의 과거 상처를 회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현재의 모습이 어린시절의 모습에서 왜곡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다시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쪽으로 향하게 된다.

 삶에서 돈이 많다고 행복하지는 않다, 지위가 높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행복해진다는 것은 자아의 실현에서 나온다는 것은 이미 인본주의 심리학자인 마스로우(Maslow)가 인간 욕구 위계설에서 인간의 욕구를 삼각형으로 설명하면서 최고의 욕구는 자아 실현으로 설정해 놓은 것에서 볼 수 있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더욱 가치 있는 일이다.

 40대의 중년들이 맞이하는 중년기 위기에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자신의 자아 주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진정한 삶의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고 이것을 찾는 일이다. 삶의 장애물을 넘어가는 것은 쉽지는 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과거의 상처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의 상처가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을 알고 그 장애물을 걷어내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찾는 첩경임을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