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치료자(필자)가 소개를 하려고 하는 이 부부는 결혼 식을 올린 지 6시간 만에 호텔에서 신혼의 첫 날 밤을 보내는데 실패하고 헤어진 이야기를 담은 영화 속의 한 부부의 이야기이다. 몇 개월 전에 치료자는 우연히 신문에서 한 영화에 대한 글을 읽었다. 가장 행복한 날, 우리는 헤어져야 했다 라는 부재가 붙은 영화로 체실 비치에서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치료자는 이 영화가 틀림없이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헤어졌을 것이라고 예측을 하고 이 영화를 보려고 검색을 했다(:참고: 치료자는 심리학과 관계된 이벤트들과 사건들과 영화들은 빠짐없이 보거나 수집하거나 저장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치료자가 운영하는 영화 속의 주인공의 심리분석의 홈 페이지에는 지금까지 심리적인 원인 혹은 심리치료에 대한 영화 30편이 분석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극장에서 이 영화를 하는 곳이 없었다. 고로 포기를 했는데 지난 주일에 우연히 CGV 압구정동 아트하우스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지난 주 월요일(2018, 10, 28) 아침 08:50 분에 그곳에 달려가서 마침내 이 영화를 볼 수가 있었다.

치료자가 이 영화를 소개하려고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이 영화 속의 부부처럼 결혼에서 초야를 치르지 못하고 그 다음 날에 헤어진 부부를 알고 있다 그리고 서로 굳게 결혼의 언약을 맹세한 커플로써 결국은 헤어진 한 커플의 부인을 2 6개월 동안 심리치료를 한 경험이 있다. 두 번째는 초야를 치르지 못하고 3년 혹은 5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들의 치료 사례들을 섹스 치료 전문가의 저서를 통해서 잘 잘고 있다. 세 번째는 치료자가 지금 집필하고 있는 섹스와 섹스 치료의 저서를 쓰면서 섹스 문제들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1962년 영국에서 일어난 이야기 라고 밝히고 있다. 1962년의 시쯤에서 영국 혹은 미국에서 이러한 사건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섹스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와 치료가 그 시쯤에서 본격적으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전문가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점에서 영국에서는 정신분석가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는 접근하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섹스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의 시작은 킨제이(Kinsey)의 보고서로부터 시작된다. 유럽에서는 1911년에 사이비 정신분석가들의 등장으로 프로이트가 자신의 정신분석을 섹스심리학(psychosexual)이라고 천명을 했다. 그러나 그의 유아 성욕론 혹은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론은 실험실에서 나온 과학적인 이론이 아니고 그의 환자들의 치료 과정에서 나온 한 개인의 상상 속에서 나온 섹스 학문으로 묵살을 당하고 있었다.

섹스에 대한 실험실에서 나온 과학적인 섹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보자. 킨제이는 하버드 대학에서 생물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곤충학 박사 학위 후에 그는 인디아나 대학에 생물학 교수로 있었다. 그의 주된 핵심 연구는 혹벌에 대한 연구였다. 그는 남북 아메리카에서 서식하는 혹벌들에 대한 연구로써 몇 권의 저서를 가지고 있었다. 연구 때문에 결혼이 미루어져서 미혼으로 지내다가 40대 중반에 한 제자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그는 늦깎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의 첫 날 밤에 그의 페니스가 발기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 섹스 욕구는 왕성해서 열정적인데 그러나 성기가 발기가 되지 않는 즉 페니스가 일어나지 않는 발기부전으로 당황하게 되었다. 학자로써 그는 당연히 그의 발기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섹스 관계된 서적을 찾기 시작했다. 심리적인 문제들을 가지게 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래서 자신의 문제의 심리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서 심리학 서적 혹은 정신의학 서적들을 둘 추기 마련이다. 그런데 섹스에 대한 연구가 부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시쯤에서 그는 섹스의 과학적인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다(Masters & Johnson, 1966.(주㈜: 참고).

1938년에 인디아나 대학에서 본격적인 섹스에 대한 연구를 시작 했다. 포드 재단으로부터 연구 자금을 지원 받아서 그의 개인적인 연구소를 섹스에 대한 연구소로 이름을 개칭을 했다. 미국 전국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1 8천 건의 설문 조사지로부터 회신으로 받은 1 2천 건의 대답들을 10 년 동안 연구한 통계학적인 결과를 1948년에 인간 남성의 섹스 행동이라는 저서로 출판을 했다. 이 저서는 미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동안 섹스에 대한 금기시 된 내용들을 담론으로 건드린 것이었다. 그의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남성의 섹스 연구로부터 이번에는 여성의 섹스에 대한 연구로 확대가 되었다. 그러나 킨제이가 연구를 하던 시쯤에서는 컴퓨터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사진을 사용을 해서 연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여성의 음부의 사진들을 전 세계로부터 수집을 했다. 왜냐하면 대표적인 샘플이 되기 위해서는 미국 이라는 한정된 지역보다는 전 세계의 여성들의 샘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 여성 음부에 대한 사진들이 세관에서 적발되었고 언론에 보도 되면서 킨제이는 포르노 수집가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1953년에 출판된 인간 여성의 섹스 행동은 재난이었다. 모든 언론들과 잡지들이 여성의 음부의 사진들과 묘사들에 대해서 포르노적인 비판 때문에 포드 재단으로부터 연구 자금이 끊어지고 70여명의 연구진들이 해체 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는 1956년에 62세의 나이로 화병으로 사망을 했다(2004년에 킨제이의 일생에 대한 영화가 우리 나라에서도 상영, 리암 닐슨의 주연)(Zilbergeld, 1978: (주㈜: 참고).

일명 킨제이 보고서로 알려진 이 연구는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학적인 통계연구로 이후에 연구자들에게 많은 디딤돌이 되었다. 그러나 이 연구에 흠은 생리학과 해부학적인 부분과 심리학적인 부분이 빠진 것으로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의 연구를 계승해서 부족한 부분을 14년 동안 연구를 하게 된 킨제이의 후계자가 등장하게 된다.

그가 바로 센트 루이스 의과 대학의 산부인과 교수인 윌리함 마스트(William Masters)이다. 그는 섹스학에 대한 해부학과 생리학 그리고 심리학과 사회학적인 통합적인 연구를 기획을 하고 있었다. 1954년에 센트 루이스 대학 산부인과에서 인간 재생산 연구소를 설립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실험의 대상으로 사용할 여성이 없었기 때문에 신문에 광고를 냈다. 여성의 성기에 대한 컴퓨터 실험 연구를 도와줄 여성을 찾는다고 광고를 냈고 이 광고를 보고 용감하게 지원한 여성이 바로 간호사 출신인 버지니아 존슨(Virginia Johnson)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모든 저서와 논문에서 두 사람의 이름으로 등장하게 된다 즉 마스트와 존슨(Masters and Johnson)으로 통하게 된다. 마스트와 존슨은 여성의 성기 속에 컴퓨터를 장착한 인공 남근으로 여성의 흥분단계, 고원단계, 오르가슴 단계 그리고 해제 단계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내면의 버자이너(음부)의 움직임들을 사진으로 찍어냈다. 14년 동안 연구를 하면서 성인 남성(21-78세까지) 382명과 성인 여성(21-79세까지) 312명을 대상으로 10,000여 회 이상의 실험을 실험실에서 실시를 했다(Kaplan, 1974: 주㈜: 참고).

14년의 연구의 결실로 1966년에 인간의 섹스 반응이라는 저서를 출판을 했다. 이 책은 섹스학의 연구에 전설적인 책이 되었다. 출판 된 1966 4월 달에 책이 매진이 되었고 5월 달에 역시 매진이 되었다. 그 후 12년 후에 1978년까지 무려 21 판이 출판되었다. 뉴욕의 문고판 반탐북(Bantam Books)으로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 1980, 6월 달에 1판으로 같은 달에 제 2 판 그리고 제 3판으로 6월 한달 안에서 3판이 출판되었다고 기록 되어 있다.

치료자가 미국으로 치료 심리학을 전공하기 위해서 1983 8 3일에 미국으로 떠나기 이전에 이미 미국의 몇 개의 대학으로부터 받은 대학 안내서에서 치료 심리학을 공부하려고 하면 반드시 심리학을 전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료자는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 전공은 수용할 수 없다는 통고를 받고 다시 미국의 대학 1학년에서 심리학을 시작을 한 것은 여러 차례 글에서 밝혔다. 치료자는 이미 미국에 출발하기 이전에 심리치료학을 전공하려고 하면 물리, 화학 중에 1 과목과 수학을 필수과목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화학을 다시 공부를 해야 했다 그리고 섹스학을 필수과목으로 이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로 생물학에서 인간의 신체의 부분(영어 단어들)를 미리 공부를 하고 갔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대학에서 섹스학을 그리고 대학원에서 섹스 심리학을 이수를 했고 정신분석학에서 절반이 섹스학이라는 것을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심리치료와 심리상담에서 섹스학은 약방의 감초와 같다. 부부 문제는 섹스학을 다루지 않고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이 글의 후반부에 그 이유가 밝혀진다). 청소년의 문제들은 사춘기 때 등장하는 섹스 문제로써 시작된다는 것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에게 핵심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적인 문제들도 섹스에 관계되지 않는 것은 문제들이 거의 없었다. 이성관계는 섹스와 관계 된다. 미국에서 10년 동안 공부를 끝내고 부산의 부경대학(과거의 수산대학)에서 심리학 강의를 하면서 섹스심리학 쪽으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이 강의를 따라올 수 있을까? 걱정을 해지만 학생들은 섹스 심리학을 잘 수용해주었다. 20년 동안 섹스에 대한 강의와 심리치료에 대한 강의로 대형 강당의 100명의 강의실은 항상 만원으로 인기가 있었다. 아직도 우리 나라에서 대학 강의에 제목이 섹스학이라는 강좌가 열리지 않고 있다. 치료자는 섹스학 강좌의 이름으로 강의를 한 것이 아니고 심리학에서 섹스학 부분을 강의한 것으로 섹스학 강의 자체를 학생들에게 강의한 것은 아니다.

치료자는 지금도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섹스학과가 창설되지 않고 섹스학의 전문가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루도 빠짐 없이 터져 나오는 섹스 범죄들과 사회의 각계 각층에서 성폭행, 성추문과 성희롱에 대한 사건 사고 들을 보면서 섹스에 대한 연구와 전문가의 배출이 시급하다고 느끼면서 36년 동안 섹스에 대한 치료와 연구와 심리치료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섹스와 섹스치료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다시 영화 속의 부부의 이야기로 되돌아 가 보자. 1950년대는 영국과 미국에서 섹스에 대한연구가 시작되고 있었지만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다. 1966년에 마스트와 존슨이 인간의 섹스 반응에 대한 저서가 나온 것을 보면 1962년은 섹스에 대한 지식들이 상식적이고 무지에 가까웠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에서 섹스에 대한 치료가 시작된 것은 1969년에 마스트와 존슨이 센트로이트 대학에서 그들의 14년 동안의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 재생산 연구소에서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섹스 치료를 시작을 했다. 여기이어서 1972년에 뉴욕의 코넬 의과대학에서 캐플란(Kaplan)이 섹스 치료 센터를 개설을 했고 그리고 1974년에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에서 질베르젤드(Zilbergeld)와 바르바크(Barbach)가 섹스 치료 센터를 개설해서 섹스 치료를 시작했다(Barbach, 1984: 주㈜: 참고).

이러한 점에 비추어 다음의 주인공들을 상상하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1950년대에 주인공인 에드워드는 런던 대학의 대학원에서 역사학의 석사를 끝내면서 수석 졸업을 하게 된 소식을 가족 구성원들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가족 구성원들은 이미 감정이 죽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아무도 그의 소식에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없었다. 어머니는 오래 전에 열차를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열차의 열리는 도어 문에 머리를 다쳐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된지 오래되었다. 어머니는 가끔 옷을 홀랑 벗고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집 안에서 늘 이상한 행동에 집착하는 어머니의 행동 때문에 가족구성원들은 말이 없어졌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가득 찬 가족 분위기가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로 어머니의 문제 행동에 뇌의 문제로써 속수무책으로 일관 되었다. 쌍둥이 여동생도 감정이 없이 무표정하게 되어버렸다. 어느 날 반핵 운동에 참가한 에드워드가 한 여학생에게 자신의 수석 졸업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가 반갑게 반응행동을 해 준 것이 동기가 되어 서로 친하게 되었다. 그녀는 왕립 음악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플로렌스라는 이름의 여학생으로 그녀 역시 수석으로 졸업한 것을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감정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두 사람은 학교 시절에는 공부 이외에는 다른 것에 대한에 대한 것들을 유보한 범생이(공부만 열심히 하는 모범생의 별칭)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러한 공통점이 그들을 급격하게 가까워지게 만들었고 서로 소통을 하게 되었다. 에드워드는 그의 가족의 약점인 그의 어머니의 뇌 이상을 마침내 플로렌스에게 솔직하게 털어 놓고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놀라지 않았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에드워드의 가족들을 방문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고 에드워드가 그녀의 요청을 수용해서 드디어 그녀가 에드워드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특이하게 플로렌스의 다정다감함은 에드워드의 가족들 특별히 이상 행동을 하는 어머니에게 마음이 전달되어져서 어머니가 플로렌스를 좋아하게 되었고 당장 결혼을 하라고 이야기를 했다. 여동생들과 그리고 아버지도 플로렌스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해서 에드워드의 가족 분위기가 플로렌스 때문에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플로렌스는 에드워드의 가족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고 한 가족 구성원으로써 며느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에드워드 역시 플로렌스의 가족들을 방문했고 인사를 했다. 플로렌스의 가족들 역시 보수적인 가족이었다. 플로렌스의 어머니는 에드워드에게 어느 대학을 졸업 했느냐? 라고 물었을 때 에드워드가 런던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해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장사꾼들이 다니는 대학이 런던 대학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플로렌스의 아버지는 자신이 런던 대학 출신이라는 것을 비하하는 부인에게 그 대학에서 많은 기술 전문가들을 배출하지 않았느냐?라고 에드워드를 감싸 주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에드워드는 아직 결정이 된 것은 아니지만 연구직으로 나갈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플로렌스의 아버지는 작은 소기업으로 인쇄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를 하면서 당분간 자신의 인쇄소에서 일을 해도 좋다고 에드워드를 수용해줄 의사를 밝혔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는 이제 양쪽 가문에서 인정하고 수용해서 서로 결혼식을 하는 것만 남겨두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골프 장에서 잔디를 깎는 일을 하는 에드워드를 방문해서 서로 장난을 치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두 사람은 젊은 연인들의 가지는 첫 사랑의 로맨틱한 사랑의 밀어 들을 나누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보트 장에서 보트를 타거나 미래의 계획들을 서로 이야기를 했다. 플로렌스는 지금 그녀가 하고 있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4 중주(바이올린 2, 비올라 1, 첼로 1)를 연습을 해서 영국에서 최고의 음악 홀인 위크모어 홀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에드워드는 그 공연 때 그가 세 번째 줄의 중앙에서 브라보를 힘차게 외칠 것이라고 서로의 지원과 격려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플로렌스는 결혼을 해서 딸을 낳는다면 그 딸의 이름을 클로이 라고 지을 것이라고 태어날 딸의 이름을 지어 놓았다.

두 사람은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고 체실 비치에 있는 고전풍의 평범한 호텔에서 첫 날 밤을 보내게 되었다. 호텔의 생활은 둘 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서툴렀다. 호텔의 음식을 전달하는 웨이터들이 실수로 포도주를 엎질러서 물로 채워 넣은 장면에서 이 결혼에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예견이 들었다.

두 사람은 그 포도주에 물이 탄 것을 모르고 즐겁게 마시는 것에서 호텔의 생활에 초보자인 것을 영화가 보여주면서 두 사람의 첫 날 밤을 보내는 과정을 과거의 연상으로 연결해서 그 영화의 전체 줄거리에서 전반 이상을 첫날 밤의 두 사람의 행동들을 보여주면서 이 부부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견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플로렌스의 블라우스의 뒤쪽 지프를 내리는데 서투른 자신의 행동에서 부끄러워했다. 섹스에 대한 정보와 지식의 부족으로 서툰 장면들이 연출이 되었다. 플로렌스는 신체적인 애무를 원하는 에드워드에게 지연 작전으로 일부러 몸의 접촉을 막으려고 하는 것을 에드워드는 감지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플로렌스는 결혼식 날짜가 다가 오면서 첫 날 밤에 대한 준비로써 사랑, 섹스와 결혼이라는 책을 읽어보면서 첫 날 밤의 남자와 여자의 부부 관계를 잘 보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부끄럽고 수치스러움에서 그 책을 보다가 그녀의 여동생에게 들켜서 깜짝 놀래서 책을 숨기면서 첫 날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라고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는 서로 친하게 사랑을 속삭이면서 다른 젊은이들의 러브 스토리와 손색 없는 사랑을 나누었지만 서로 몸을 만지거나 애무를 하는 신체적인 접촉을 철저하게 거부를 했다. 에드워드는 그것이 순결을 지키려는 소녀의 순정으로 생각해서 신체적인 접촉을 거부하는 플로렌스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여성의 순결이 최고의 미덕이었고 그리고 애정의 표시로 서로 몸을 애무하는 것을 변태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극장에서 에로틱한 영화를 보면서도 옆에 앉아 있는 커플들이 모두 키스를 하고 신체적으로 애무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에드워드가 플로렌스의 몸을 만지려고 했을 때 플로렌스가 거부하는 장면들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왜 플로렌스가 그러한 신체적인 접촉을 거부하고 놀래는가?하는 것은 이후에 밝혀지게 된다.

남자와 여자의 섹스 관계에서 모든 책임은 남자가 져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부담이 된다. 여성을 리드해서 잘 이끌어 주어서 여성이 오르가슴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남자의 의무라고 인식되어져 있었다. 에드워드는 이러한 의무 감에서 긴장과 불안으로 서툰 모습들이 연출이 되면서 섹스 지식과 침실에서 여성을 다루는 능력의 부족과 섹스에 대한 무지에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보여주게 된다.

서로 애무로 연결되는 그 과정에서 느닷없이 플로렌스가 에드워드에게 몇 명의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느냐? 라는 엉뚱한 질문을 하게 되었고 에드워드는 몇 명 정도 된다고 거짓으로 자신의 남성다움의 체면을 내 세우려고 하다가 끝내는 여성과 섹스 관계의 경험이 처음이라고 부끄럽게 이야기를 했다. 플로렌스 역시 남자와 섹스 경험이 처음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가 첫 경험이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에드워드가 플로렌스의 팬티를 벗겨내고 옷을 벋고 플로렌스의 위에 올라타려고 했을 때 플로렌스의 몸이 경직됨을 필자는 느낄 수가 있었다. 플로렌스는 무엇인가?에 놀래서 긴장되고 불안한 얼굴 표정과  하체의 경련을 에드워드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플로렌스가 에드워드의 남근을 붙잡아서 도와주려고 하는 순간에 에드워드가 사정을 해 버린 것이다. 그 순간 플로렌스의 폭발적인 분노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나는 이러한 것에는 참을 수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옷을 입고 호텔 밖으로 도망을 가 버렸다.

에드워드는 옷을 입고 그녀의 뒤를 쫓아서 달려 나갔다. 그녀는 체실 비치의 조약돌 해변에서 분노와 적대감정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에드워드 역시 여성을 리드하지 못한 남자의 체면과 그리고 그녀의 허벅지에 사정을 해 버린 부끄러움 때문에 모욕, 망신, 수치심으로 플로렌스에게 분노했다. 이렇게 남자를 망신시키고 모욕을 줄 수가 있는가? 라고 분개 했다. 플로렌스는 섹스에 자신이 없으니 앞으로 결혼 생활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섹스는 다른 여성과 하면서 욕구 만족을 시키면 되지 않는가? 라고 엉뚱한 이상한 질문에 에드워드가 폭발을 하면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6시간 만에 행복한 커플은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분기탱천해서 플로렌스 집에 찾아가서 결혼은 끝임을 선포하고 자신의 짐을 챙겨서 나와 버렸고 그리고 집에 가서 다시는 플로렌스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여기에서 왜 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커플로 연애를 했던 그 부부가 왜 서로 등을 돌리고 이혼으로 해어졌는가?를 그 영화는 구체적으로 증거를 보여주지 않는다. 치료자는 36년 도안 심리치료와 부부 문제를 연구하고 치료를 해 오면서 이 부부와 유사한 부부들을 많이 보았고 치료를 해 본 결과를 바탕으로 두 사람의 헤어진 근본 문제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사람이 다 섹스에 대한 정보가 없었고 미성숙하게 반응한 탓으로 섹스가 첫 날 밤에 이루어 지지 못하고 초야를 치를 수가 없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것 보다 더욱 더 큰 문제는 플로렌스가 비밀을 에드워드에게 고백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떤 비밀인가?는 그 영화는 확실하게 증거를 보여주지 않지만 연상으로 플로렌스가 아버지로부터 성폭행 혹은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플로렌스가 사춘기 때 아버지와 보트 여행을 하는 장면에서 아버지에게 적대적인 불쾌감을 보여주는 장면과 그리고 에드워드가 성기를 플로렌스의 버자이너에 삽입하려고 근처에 갔을 때 플로렌스가 자신도 모르고 에드워드의 남근과 손이 마주치면서 에드워드가 너무 예민하게 되면서 사정을 한 정액이 플로렌스의 사타구니와 허벅지에 흘러내리면서 플로렌스가 한 말 즉 나는 이러한 것에 참을 수가 없다라고 고함을 치면서 분기탱천으로 밖으로 뛰어나가는 장면이 그것을 말해 준다.

또 하나의 증거는 플로렌스가 결혼 날짜가 다가오면서 불안해하고 안절부절 못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과 섹스와 결혼 이라는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면서 정보를 얻으려고 한 것은 섹스에 대한 자신감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섹스는 사랑을 몸으로 전달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경구는 서로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몸을 애무하고 만지게 되면서 사랑이 극치로 연결되고 그리고 서로가 몸을 통해서 사랑을 전달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플로렌스는 사랑이 무르익어갈 때 몸의 접촉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것에서 알 수가 있다.

결정적인 증거는 플로렌스가 결혼 날짜가 다가 오면서 신부님에게 그 비밀을 고해성사로 고백하려고 신부님을 찾아갔다. 핵심 문제가 그녀의 다가 오는 결혼식이라고 이야기를 꺼 내 놓고는 아버지와 성폭력 혹은 성추행 상처를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그의 4 중주의 멤버 중에서 첼로는 연주 하는 찰스라는 한 남자 청년이 그녀를 뒤쫓아 다니면서 그녀를 괴롭히려고 한다는 말을 한 후에 뛰쳐나와 버렸다. 신부님이 결혼식을 앞둔 신부의 얼굴에 불행한 그림자가 보인다고 지적을 했지만 그녀는 부인을 했다. 신부님은 그것이 아니고 더 큰 비밀이 있는 것 같으니 이야기를 하라고 했지만 그녀는 거부를 했다.

이 사건이 결국은 두 사람의 결혼에 장애물이 된 것이다. 플로렌스는 그 성폭행 혹은 성추행 이야기를 하면 에드워드가 실망해서 그녀를 버리고 떠날 것이라고 염려에서 그것을 비밀로 간직하고 밝히기를 거부한 것이 결국은 두 사람을 헤어지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그 비밀을 이야기를 하고 서로가 위로와 격려로써 소통을 했더라면 첫 날 밤에 초야의 실패는 얼마든지 해결되어질 수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플로렌스가 자신의 섹스의 비밀을 감추었기 때문에 그 장애물이 두 사람의 결혼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치료자는 위와 유사한 사례들을 많이 보고 치료를 했다. 치료자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미국 판 한국일보 신문에서(한국의 신문에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정보들을 첨가한 신문) 그 당시에 유명한 여배우인 xxx씨가 미국에서 사업가와 결혼 후에 첫날 밤을 지내가 나서 이혼을 선포하고 떠났다는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다.

유사한 사례로써 치료자가 치료를 한 한 부인의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대학 시절에 사귄 연인과 결혼을 약속하고 서로가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를 즐겼다. 그들은 결혼 후에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지어놓았다. 그리고 만약에 6.25 사변과 같은 전쟁으로 서로가 헤어지게 되면 부산의 남포동 네거리에서 신년 1 1일에 만날 것을 약속을 했다. 혹시라도 전쟁으로 헤어질 것에 대한 준비를 한 것이었다. 그들이 만나서 사랑을 나눌 때 길거리에서 증표로 호두를 두 개씩 나누어 사 가지고 다니면서 호두를 손바닥 안에서 부딪치면서 달까닥거리는 소리를 좋아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가 가진 두 개의 호두는 지금도 그녀의 책상 설합에서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두 사람 사이에 섹스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대학 4학년 졸업 시점을 앞두고 이 여성이 그의 연인과 관계를 단절을 했다. 그를 피해서 숨어버린 것이었다. 그녀가 숨어버린 이유는 그녀 자신도 몰랐다. 그 남자 친구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찾아와서 헤어지는 이유를 말해 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그녀는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 남자 친구는 식음을 전폐하고 몸져누워있으니 그의 어머니가 아들을 살려 달라고 애원을 했으나 거부를 했다.

그 다음 해에 그녀는 우울해져서 어느 날 아무 기차나 닥치는 데로 타고 여행을 하는 기차 안에서 현재의 남편인 된 청년을 만났고 결혼을 했다. 그는 목사님의 아들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녀는 그를 좋아하거나 사랑해서 결혼한 것은 아니었다. 첫 사랑의 상처 때문에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서 일부러 결혼을 했다고 실토를 했다. 그 결혼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녀를 출산 하자고 하는 남편의 요구에 거부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박사 학위 후에 지방의 대 도시에서 xx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우울증 때문에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2 6개월 동안 받으면서 왜 그녀가 그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분석으로 밝혀냈을 때 그녀가 시인을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생활에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기술이 없었고 언니와 남동생과 그녀의 세 사람의 생계 때문에 그 시점에서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그녀의 언니가 그 당시에 유행을 했던 일본인의 현치 처로써 그 남자와 원조 교제로 생활을 하면서 생활비용을 벌게 되었다. 그 일본인은 사업가로 일본에 부인이 있었지만 한국에 젊은 아가씨와 동거를 하면서 한 달에 1번 혹은 2번으로 한국을 방문할 때 같이 섹스의 대상이 되어준 덕분에 생활 비용과 동생들의 학비를 조달 받게 된 것이 분석의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녀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가정이 너무 가난해서 달 동네에 산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숨기고 비밀로 해서 방과 후에 친구들과 함께 귀가 하면서 그녀의 달 동네를 피해서 다른 곳으로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숨어서 집으로 귀가했던 과거의 상처들을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일본의 그 남자가 한국을 방문 했을 때 그의 배려로 그의 온 가족이 그 당시에 리무진 승용차를 타고 가면서 최고급 승용차의 선탠으로 내부가 가려진 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쳐다 보면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는 귀족 풍의 즐거움과 호텔에서 먹는 최고급의 요리 들에 입맛을 돋구면서 부자인 체 했던 그녀의 어린 시절의 철이 없이 즐겼던 즐거움이 이후에 부메랑으로 돌아와서 그녀의 죄의식에서 그녀 자신을 스스로 처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공부를 잘 해서 마침내 SKY 대학에 합격해서 그녀의 대학 학비를 언니의 원조 교제를 하는 그 일본인으로부터 도움으로 학비를 지원받아서 졸업을 했고 대학의 교수가 된 것에 대해서 수치심과 모욕 감정이 분석의 과정에서 밝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연인과 사귀면서 그녀의 이러한 과거의 사생활의 비밀을 철저하게 숨겼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고백을 했다. 결국 결혼을 하게 되면 그러한 비밀들이 하나씩 밝혀지게 될 것을 두려워해서 스스로 관계는 단절해 버렸다고 실토를 했다.

언니는 그 후에 원조 교제를 청산하고 결혼을 해서 지방의 소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속에 받은 언니의 몸을 팔아서 공부를 한 죄의식 때문에 우울증에서 빠져 나올 수 없어서 10년 동안 심각한 우울증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내면서 그녀의 마음 속에 죄의식을 속죄하기 위해서 스스로 결혼의 행복을 거부하고 자신에게 고통으로 자신을 고문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어서 지적을 했을 때 시인을 했다.

그녀는 첫 연인을 보내고 나서 그 남자를 잊을 수 없어했다. 결혼한 남편은 연인의 대리인으로 아무런 감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 남자와 결혼은 허상이었고 그리고 관계 자체를 거부했다. 그녀는 매일 같이 첫 사랑의 그 남자의 이름 부르면서 그를 잊을 수 없어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혹시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전국의 대학 교수 명단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 남자의 누나가 그 당시에 미국에서 유학중인 것을 알고 그의 누나가 지금은 지방의 명문 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전화 전호를 알고 있었으나 전화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남자 친구를 거부한 것에 대한 그 남자의 가족구성원에 대한 원망과 비판을 감수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고백을 했다.

치료자는 그 남자 친구를 떠나 보내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 했다. 그 남자에 대한 애도와 애통의 과정에 고착된 것임을 밝혀 내고 그 감정을 치유를 해서 그녀의 남자 친구에 대한 애착을 치료해야 한다고 지적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남자 친구를 그녀의 마음 속에서 떠나 보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를 떠나 보내면 그녀의 자아는 텅 비고 삶에서 의욕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저항을 했다. 그녀는 과거의 연인에 발목이 잡혀서 중년이 된 지금도 그 남자를 잊지 못해서 과거의 상처에 발목이 잡혀서 그녀의 삶을 저당 잡힌 것을 깨닫게 했다.

다시 체실 비치의 영화의 결말로 되돌아가 보자. 그들이 서로 헤어진 지 45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에드워드는 이제 70대가 된 2007년에 어느 날 에드워드가 음반 가계를 운영하고 있는 가계에 초등학교 6학년 정도의 한 소녀가 음반을 구입하려 나타난 것이었다. 척 베리의 앨범이었다. 그 소녀는 어머니가 클래식을 좋아하는데 이 음반 만은 특별히 좋아한다고 했다. 그 음반은 두 사람이 사랑을 했을 때 에드워드가 좋아했던 음악이었다. 에드워드는 그 소녀의 이름을 물어 보았을 때 그녀의 이름이 클로이라고 했을 때 깜짝 놀랬다. 옛날 첫 사랑의 그녀가 딸을 낳으면 클로이 라고 이름을 지을 것이라는 기억을 회상을 하면서 그녀가 플로렌스의 딸임을 직감으로 알 수가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 음반을 무료로 그녀에게 선물을 했다.

얼마 후에 라디오에서 왕립 음대를 졸업한 4 중주 단이 위그모어 홀에서 고별 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플로렌스는 결혼을 해서 딸과 손자들이 있다는 뉴스를 그 라디오에서 듣게 되었다. 에드워드는 그 공연 날에 위그모어 홀에 가서 첫 사랑과 약속을 한 세 번째 가운데 줄에서 앉아서 그녀의 4중주 연주를 듣고 있었다. 플로렌스 역시 70대의 노인이 된 백발과 주름살의 얼굴에서 가운데 세 번째 줄에 앉아서 그녀의 연주를 경청하고 있는 백발이 된 에드워드를 한 눈에 알아 보고 서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으로써 영화는 끝이 난다.

에드워드는 첫 사랑과 헤어진 이후에 결혼을 하지 않았고 독신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그는 대학원 시절에 역사학을 전공해서 학자가 되려고 하는 꿈을 포기해서 음반 가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 음악에 대해서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가 음반 가계를 하게 된 것은 플로렌스라는 첫 사랑의 음악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음반 가계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음반 가계에 오는 단골 들에서 그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어떤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그의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에게 그의 첫 사랑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쓸쓸하게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플로렌스는 에드워드와 첫 날 밤의 초야에서 실패하고 이후에 차선 책으로 첼로를 연주하면서 그녀를 뒤쫓아 다녔던 찰스와 결혼을 한 것이 영화 속에서 밝혀졌다. 에드워드와 결혼에서 초야에서 실패한 사람이 이후에 찰스와 결혼해서 섹스를 가지게 되었고 그리고 여러 명의 자녀들을 낳았다는 그 사실은 에드워드와 초야의 실패에서 플로렌스는 그 이후에 왜 섹스의 문제가 해결되었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치료자는 위와 같은 여성들의 첫 번째 섹스 실패로 인한 그 상처가 두 번째 만난 남자들과 사이에서 어떻게 섹스가 이루어지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유사한 사례들을 많이 접할 수가 있었다. 여성들은 결혼을 할 때 배우자의 선택을 항상 자신보다 한 수 위의 남자들을 선택을 한다.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좋은 후손을 낳겠다는 모든 동물들의 종족 보전의 욕구로 해석을 하고 있다. 즉 여성들은 자신보다 어떤 점에서 우월한 남편감을 선택을 한다. 이 영화에서 플로렌스는 에드워드를 이상적인 연인으로 보고 있다. 같은 4 중주 연주 단에서 찰스라는 젊은이가 그녀를 좋아해서 뒤 꽁무니를 쫓아다닌다고 불평을 종종 에드워드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그녀의 연인인 에드워드에게 그녀의 비밀을 숨긴 것이고 그 결과 서로 헤어졌다. 그런데 찰스는 에드워드 보다 한 수 아래이기 때문에 그녀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이 적었다. 그녀는 찰스는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별볼일 없는 남자로써 더 이상 이상적인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긴장하고 불안해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녀는 실망해서 찰스가 하자는 데로 끌려 가면 되는 것이다 고로 섹스에서 긴장과 불안이 감소되어졌기 때문에 섹스는 가능하게 이루어지게 되었고 자녀들을 출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로 여성들이 섹스적인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 이것을 비밀로 하면서 결혼을 한 경우에는 대부분이 자신의 수준보다 한 수 아래인 남성을 배우자고 선택하게 된다는 사례들을 치료의 과정에서 많이 보아왔다.

치료자에게 심한 우울증으로 심리치료를 2년 정도 받았던 또 다른 40대 초반의 한 여성은 초등학교 6학년의 아들을 가진 여성으로 남편은 일반직 공무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우울증을 이야기를 하면서 특별히 여고 시절에 변소 공포증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녀의 변소 공포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느냐? 라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녀는 여고 1학년 때 변소 공포증 때문에 변소에 갈 수가 없어서 화장실에 갈 때마다 친구들이 대동을 하고 변소에 갔다고 털어 놓았다. 과거에 학교 변소는 재래식 변소였기 때문에 변소에 가면 음산한 분위기로 귀신이 나온다는 공포증인가? 혹은 이상한 변태 남성이 변소에 숨어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인지 물었을 때 귀신이 아니고 변소에 숨어 있는 남자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얼굴이 연상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치료자는 귀신이 아니고 사람의 얼굴 이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물었을 때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느냐? 라는 질문에 학교 화장실에 갈 때는 친구들이 여러 명이 같이 지원을 해 주었고 여고 졸업 이후에 그 변소 공포증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틀림없이 어린 시절에 상처를 받은 것이 있을 것이니 그것이 분석에서 드러나서 그것을 다루어야 그녀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가 어린 시절에 받는 심리적인 상처가 있는지 물어 보았을 때 그녀는 기억 나지 않는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녀에게 다음 주일 치료 회기 시간에 혹시 상처가 기억이 나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 치료 회기를 끝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 치료 회기 시간에 그녀는 그녀가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때 연속으로 담임을 했던 한 총각 선생님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것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때는 그 선생님과 사랑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시점에서 학급 반장과 전교 부회장을 했던 똑똑한 여학생으로 다른 학생들보다 성숙한 여학생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는 그 당시에 입시가 성행을 했던 시절로 담임 선생님이 저녁 때 공부를 가르쳐 준다는 것을 이유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서 담임 선생님의 하숙집에서 입시 공부를 지도를 받게 되었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것이었다고 고백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실토를 했다.

중학교에 진학 하면서 그녀는 그 이후에 그 선생님을 피해서 다녔고 사춘기가 시작되는 중학교3학년 시점(과거에 우리 부모님의 시절에는 사춘기가 17, 18, 19살에서 시작되었다)에서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나쁜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변소 공포증으로 등장하게 된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치료자는 그녀가 변소에 가서 옷을 벗을 때 성기의 노출 때문에 과거에 잊어버린 성폭행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떠 오르게 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집의 변소가 아닌 학교의 변소가 연상이 된 것은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과 관계되어져 있고 그리고 특별히 화장실에서 떠 오르는 그 얼굴이 바로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아닌가? 라고 지적을 했을 때 그 부인이 깜짝 놀래서 확실하다고 시인을 했다. 변소 공포증은 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그 증세는 사라진 것이었다. 그녀는 그 이후에 공무원으로 취업을 했고 전망 좋은 많은 남자 배우자 후보들로부터 결혼의 신청을 받았지만 과거의 성폭행의 상처 때문에 마음에 들고 전망이 좋은 남자들로부터 구혼을 스스로 거부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가 배우자로 결혼을 하게 된 지금의 남편은 그녀가 진실로 사랑을 해서 결혼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녀는 고교 시절부터 한 동네에서 그녀에게 끝없이 구혼을 해 왔던 남자와 결혼을 했고 아들을 낳아서 지금은 살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삶에서 희망과 의욕을 상실하고 죽고 싶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의 치료 과정에서 그녀의 담임 선생님에 대한 분노를 말로써 표현하기 위해서 그녀의 분노를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그녀는 담인 선생님에 대한 분노가 없다고 했다. 그녀는 순결을 잃어버린 것은 그녀의 잘못이고 그녀가 더러워졌기 때문에 좋은 이상적인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그것은 강간이 아니고 성폭행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면서 강제로 성기에 폭행을 당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것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그녀의 분노를 끄집어 내기 위해서 그녀가 보관하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과 함께 찍은 앨범들과 사진들을 가지고 오게 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에 그녀는 그 시점에서 찍은 수학 여행과 앨범들의 사진들이 담임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한 장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깜짝 놀랬다. 그녀 자신이 일부러 사진들을 없앤 것이 아니고 이사를 다니면서 저절로 없어진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그것이 바로 담임 선생님에 대한 분노, 적대 감정임을 지적하고 그녀가 약 1년 동안 그 담임 선생님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면서 과거의 상처들을 털어 내고 치유의 과정을 거치게 했다. 그녀는 마침내 과거의 성폭행 상처를 지금의 남편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남편의 용서와 이해를 받아서 그녀가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야기가 위의 플로렌스의 섹스 상처 이야기와 닮아 있었다.

플로렌스는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가지고 그리고 그녀의 4중주 연주회로써 그녀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연주 홀에 찾아온 에드워드의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에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녀의 아름다운 첫 사랑의 이야기를 실현하지 못한 과거의 이야기가 그녀를 가슴 아프게 하면서 평생 동안 한 쪽에 그와 사랑의 이야기가 묻혀서 가슴앓이를 한 것은 틀림이 없지 않았는가?

만약에 그녀가 그녀의 과거의 성폭행 이야기를 위에서 40대의 젊은 부인처럼 남편에게 고백을 하고 용서를 받았다면 에드워드와 결혼이 환상적인 연애와 그녀가 기대했던 이상적인 결혼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에드워드 역시 전공을 살려서 참된 삶을 살았더라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커플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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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마스트와 존슨(Masters & Johnson)의 저서인 인간의 섹스 반응(1966)과 마스트와 존슨이 14년의 섹스에 대한 실험실 연구를 바탕으로 개설한 섹스 치료의 서적인 인간 섹스의 부적당함(1980)의 서적들

           : 헬렌 케플란(Helen Kaplan)이 쓴 새로운 섹스 치료(1974), 섹스 욕구 장애들의 치료(1979)

           : 질베르젤드(Zilbergeld)의 남성의 섹스 치료(1978)

           : 바르바크(Barbach)의 서로서로: 여성의 섹스 치료(1884)

위의 저서 들은 치료자가 우리 나라 말로 번역을 해서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전문 서적 안내 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